내 아버지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으셨는데 나이가 들며 퇴행이 진행되다 60세가 넘어서는 결국 시력을 완전히 잃으셨다. 망막은 눈으로 들어온 빛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하며 신경을 통해 뇌로 정보가 전달된다. 그러나 망막색소변성증은 이러한 기능을 하는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의 기능이 소실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이런 질병에 걸리면 시각세포가 손상되어 점차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된다.

이렇게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고 등 후천적 시각 장애를 겪는 사람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많다. 감사하게도 내 아버지는 이러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긍정적인 삶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아쉬운 것은 책을 참으로 좋아하셨는데 시력을 잃으신 다음에는 읽기보다 듣기에 의존된 삶을 평생 사셨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아들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셔서 가끔 전화를 해 내가 쓴 책이나 좋은 책 몇 권씩을 가져오게 했다. 그 책은 침대 머리맡에 쌓여 있거나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것이 아버지가 평소 책을 대하는 태도요 삶이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각장애인의 삶보다 보통 사람의 삶을 따라 살다보니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익숙했고, 얼굴에는 늘 부딪힌 고통의 흔적들이 훈장처럼 따라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소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얼마나 보지 못하는 삶이 힘드셨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우리 안산에 점자도서관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아버지도 시각장애인이셨고 명색이 나도 안산시작은도서관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왜 진작 이런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안산은 타 도시에 비해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많고 동마다 작은도서관이 들어서 있는 소위 인문학도시다. 그럼에도 시각장애인들처럼 약자들을 위한 점자도서관 설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도서관은 1969년 설립된 한국점자도서관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보다 나은 독서환경을 열어주기 위해 국내 최초로 설립됐다고 한다. 손끝으로 읽는 점자도서가 10만권 가량 구비되어 있고 전문적인 제작과 출판을 하고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이들의 꿈이자 소망이다.

우리 안산에도 이런 중대형 점자도서관은 없을지라도 100평 미만의 작은도서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점자도서관이 생기면 시각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점자 도서, 녹음 도서 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활 교육을 통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거나 경제적 자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종이책 시대를 넘어 전자책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손끝으로 책을 읽어야만 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독서 차별이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독서 차별이 없는 세상. 우리 안산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다.

2011년 현황에 의하면 등록된 시각장애인 수는 전국적으로 25만 명 정도 된다. 경기도만도 5만 명 정도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이들은 일반인들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학습지원뿐만 아니라 정보에서도 이들은 소외되고 차별된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점자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설립을 적극 추진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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