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학

의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진짜 의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의리에 우리는 죽고 산다.’ 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과연 의리가 뭐 길래 의리에 목숨을 거는 걸까? 의리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연예인 김보성 이다.

구레나룻에 주먹을 불끈 쥐고 “엇! 엇! 엇!”하면 웬지 넘치는 박력과 패기가 느껴지며 사나이다움도 제법 느껴진다. 멋있다는 생각에 따라해 보는 모습이 좀 비슷한 거 같아 그와 같은 행동을 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김보성을 좀 닮았다는 말을 가끔 듣는 편이다. 넘치는 패기 보다는 구레나룻가 먼저 그런 것 같고 다음은 말투다. 대부분 말투가 짧다.

기면 좋고 아이면 ‘치왔부라’는 억센 억양의 거친 표현이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라디오 프로에서 스포츠에 관한 개그를 진행하는데, 야구경기에서 각 루에 주자가 다 있는 상황에서 안타 하나면 이길 수 있는 경기인데, 그 한 타를 칠 선수가 왠지 감독이 보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누구 없어 하며 찾다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타석에 선 타자, 근데 진짜 제대로 한방 날린다. 그래서 경기는 이기게 되고 제대로 한 방을 날린 선수는 스타가 된다.

기자의 인터뷰에 “이 경기를 이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는 표현이 내용을 다 아는 사람에게는 참 우습다. 기회를 준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나간걸 알게 되면 참 별 볼일 없다.

이렇게 알면 우습고, 모르면 감사하다. 의리도 그런 것 같다. 모르면 감사한데 알면 그랬어구나 하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리는 간혹 듣지 말아야 될 예기를 들으면 깨지기도 한다. 이런 걸 노려 이간질하는 사람도 많다. 잘나갈 때는 사이가 좋다가도 어느새 사이가 좀 벌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 몰수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을 참 의리 없다고도 한다. 뭐 그렇다고 의리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주변엔 의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기분이 좋다. 뭐 음식을 먹더라도 누가 먼저 내가 살게 하는 게 좀 의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의리만 지키다가 정작 가정에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아닐 때는 아니라고 제 목소리를 낼 줄도 아는 게 오히려 더 용기 있고 의미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때는 늦는다. 그렇다고 잘못 나섰다가는 서운하기도 하고 어떻게 처신하느냐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를 유지하는 묘미가 진짜 의리가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본다.

특히 정치계는 이런 의리가 아주 중요하다. 동지라는 표현을 많이 쓰다가도 뜻이 달라지면 언제라도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정치인이라지만, 꼭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이해관계에 놓여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 앞에선 의리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그 땐 이미 틀어진 상황이 봉합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끝장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의리는 지킬 때가 멋있다. 뭐 별거 아닌 걸 같고도 의리를 챙기는 시시한 행동들이 멋있는 것도 충분히 그런 분위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 생각하는 데 상대방은 같은 이만큼이 아닌 조금 만큼이면 서운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분위기를 유지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아주 힘들고 어려울 때는 된장국 한 끼의 식사도 엄청 감사한데 좀 배가 부르면 뭐 그런 걸 갖고 그러냐며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리의 분위기가 유지되는 관계 그런 관계가 새삼 멋지게 느껴지는 것은 의리가 돋보이기도 한 때이기도 하다.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 분위기 봐 가며 한다는 것이 이런 의리의 태도 아닌가.

세상 살아가다보면 이런 의리 때문에 낭패를 보기도 하고 의리 때문에 좋아지기도 하고 의리를 지키면서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의리를 지키지 위한 노력들은 틀림없이 의미 있는 행동임은 맞는 거 같다.

세월이 자나고 나면 다 알게 되니까 당장의 서운함의 차이이지 그 차이의 정도는 없는 것 같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의리 있을 때 하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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