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화문에서, 민주주의를 찾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광화문에서 저 노래를 듣고 서있다. 벌써 세 번째다. 분노하였거니와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순박한 이웃들이 광장에 가득하다. 특별히 집단적으로 학교의 깃발을 들고 참가한 대학생들과 20, 30대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지칠 만도 한데,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도 여전하다. 적어도 이 광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그녀는 국정농단, 국기문란의 중심이고 헌법유린, 국민기만의 주범일 뿐이다.

전쟁이 없다고 다 평화로운 세상은 아니다. 평화로운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뜻한다. 정의가 없는 곳에는 평화도 설 자리가 없다. 정의는 공정하고 평등하고 균형 있는 사회에서 구현된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나쁜경제’, 점점 더 신뢰를 잃어 가는 ‘나쁜정치’ 그 속에는 정의가 없고 따라서 평화도 없다. 정의를 갈망하고 평화를 찾는 시민들이 그래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인다.

지난 몇 년 동안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에 반대하는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도입되면서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커지고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와 조절을 약화시켰고 권력과 결탁한 재벌은 비대해 졌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권리는 악화되었고 설 자리는 좁아 졌다. 그 결과 지금 이 땅에는 극단적인 불평등, 불균형이 만연되어 있다. 상위 10%의 사람들의 국가 전체의 부를 5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미 균형을 잃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부유한 이들 상위 10%의 병역면제는 일반 국민들 보다 34배, 그 자식들의 병역면제조차 우리 자식들 보다 15배나 높다, 이중국적자의 비율도 대략 이 정도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불공정한 일이다.

청년 실업도 문제지만, 한평생 가족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 진 채, 힘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살아온 50대, 60대, 70대 장년, 노년들 이제 직장을 잃고 할 일이 없어 떠도는 이들이 주변에는 차고도 넘친다. 전 세대에 걸친 고용불안이 일반화되었다. 수십 년 동안 납세, 국방, 교육, 근로의 의무를 다 한 이들에게 지금 국가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취업자의 50%이상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 1951년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임금 격차 또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모두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난제들이거늘,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한다. 권력은 사사로이 유용되고 그 권력을 이용한 ‘간신’들의 농단은 도를 넘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이는 이유다. 그 이유 때문에 광화문의 분노는 담화 몇 마디로 해결 될 일이 결코 아니다.

3차례의 대통령 담화가 있을 때 마다 광장의 흐름이 바뀐다. ‘하야’와 ‘사퇴’에서 ‘탄핵’으로 더 강경해졌다, 그리고 6차 촛불에서는 ‘구속’이 대세다. 대통령이 꼼수를 쓸수록 촛불의 요구도 거세진다. 단언하건데, 향후 정치권이, 특히 대통령의 태도가 촛불의 의사에 반한다면 ‘구속’은 ‘처단’이 되고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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