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시대를 열어가는 터잡이” 안산 최초로 월간지 시대를 연 ‘월간 안산’은 그 의욕만큼이나 의미 있는 기사를 많이 내보내며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이 협궤열차에 관련한 기사다.

1994년. ‘월간 안산’ 7월호에는 협궤열차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고(社告)가 실려 있다. “꼬마열차, 관광열차, 낭만열차라 불리던 수인선 협궤열차가 그동안 60년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수인선 통학생들의 애틋한 애환이 어려 있고, 많은 예술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으며, 일제하에는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며 지켜봐야 했던 협궤열차가 8월경 없어진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이에 월간 안산에서는 예술인 및 사진동인, 학생, 주부 등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협궤열차 타기운동을 가지려고 합니다. 아울러 7월 16일 현지에서의 사진 촬영대회를 함께 개최하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이어 8월호 화보에는 폐선 되는 수인선 열차의 마지막 사진과 글이 실려 있다. 없어지네 보존되네. 찬반양론으로 술렁거리던 수인선 협궤열차가 8월말 일부 구간의 단선으로 사실상 폐선을 눈앞에 둠에 따라 늘 추억 속에 남기를 바랐던 협궤열차와 서해안의 황량한 풍경 그리고 노을빛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 한대 앞에서 소래까지 요금이 2백 원. 290원 하던 시내버스 요금에도 못 미치는 요금이 단선 조치를 앞당기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화보에는 의미 있는 사진 몇 장이 실려 있다. 바닷물이 오가는 소래 철교를 겁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린 철교 사진이다. 지금 봐도 아슬아슬한 이 모습은 달월과 소래간 철길을 오가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1965년 인천의 사진 작가 김용수 씨가 찍은 군자역의 모습에는 매표소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할머니와 마중 나온 강아지가 정겹게 나와 있다.

지금의 안산과 관련된 사진도 있다. 1983년 7월 3일 6시 50분경 안산시청 입구 한양빌딩 앞 고잔 건널목에서 인천 송도를 떠나 수원을 향하던 동차를 시내버스가 들이받아 객차 4륜 중 1륜이 전복되고 2륜이 탈선되어 18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본지 편지위원이며 안산의 향토사학자였던 고 이승언 씨가 찍은 찍었다.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 ethnography) 또는 민속지학(民俗誌學), 민족지학(民族誌學)이란 용어는 인간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정성적, 정량적 조사기법을 사용한 현장 조사를 통해 기술하여 연구하는 학문의 분야이다. 협궤열차에 대한 민속지학적 기록의 여백에는 과거 수인선이 수원, 안산, 시흥, 인천에 걸쳐 많은 일상의 이야기와 영상이 아직도 담고 있다.

기록의 문화적 여백은 60년이라는 기간이 일제 침략의 수탈 과정과 수인선을 이용한 통학생들 그리고 농수산물을 팔기 위해 수인선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이다. 군자역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염전을 바라보며 통학하던 까까머리 학생들과 소래 포구와 사리 포구에 새우를 사러 오가던 수도권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수인선이다.

단원구청이 수인선 구간이 지나던 고잔 역사 주변에서 협궤열차 사진전을 열었다. 협궤열차의 저자 윤후명 소설가도 초청하여 당시를 회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협궤열차에 대한 일상의 사소한 기록은 한 해가 저물어가며 침울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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