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은 경 안산시의회 의원

국민 어느 누구도 위임해 준 적 없는 권력을 개인 최순실이 손에 쥐고 국정을 농단하며 온갖 사익을 취해왔다는 사실은 온 국민의 가슴에 분노를 넘어 허탈의 쓰나미를 몰고왔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를 선출하고 묵묵히 침묵하였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광화문으로 나설 수 밖 에 없었던 이유이다.

트럼프 후보 당선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미국은 무능하고 한국은 더 무능하다’는 sns상의 조롱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대한국민의 주권자로 진정 용감했다.

2016년 11월 12일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열린 광화문 8차선 도로를 국민들은 당당하게 걸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며, 현 시국에 대한 질타의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촛불을 들고 뜻을 같이 하는 광화문의 100만 국민들은 국가의 힘이고 희망이었다.

애국가를 부르며 호소하던 중 고등학생들의 눈물은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였다. 이념적 성향이나 계층을 떠나 민주국가의 기본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 부조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진정한 깨달음의 행진이었으리라.

비선실세 최순실과 주변인들의 국정농단 수준의 범위는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아연실색 어이상실 그 자체다.

도를 넘는 국정 개입이 버젓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국정운영시스템이 과연 제대로 작동될 수 있었겠냐는 의구심을 짙게 했고, 결국 불신과 무능의 늪에 빠진 국가를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문제 등 국가의 역사적 운명이 걸린 정책결정 과정에 국민의 대한 책임성이 담보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계 재계 언론계 교육계 사법부 등 우리사회의 엘리트층들이 보여준 수동적 행태와 침묵을 국민들은 또 어떻게 납득해야만 하는가? 결국 기득권 세력은 이러한 국정농단의 틈바구니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보다는 비호 방조 방임으로 자신들의 아성을 더 굳건히 쌓기에 혈안이 돼있었을 뿐... 결국 국민들만 상상의 공동체 ‘나라’에 속은 느낌이 들어 ‘이것이 나라냐’ ‘내가 이러려고 ~’ 자괴감의 패러디가 쏟아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 자신 또한 일상에서 사사로움으로 정의롭지 못함에 방조하거나 방임하지 않는지 돌아다 볼 일이다.

우리는 ‘정치 민주화’의 미명 하에 사회의 기본원칙에 스스로 느슨해지고 도덕적 윤리적 가치나 공정의 가치 보다는 물질적 가치와 외형적 성과, 개인의 가치를 너무 우선시 해 왔는지도 모른다.

국정농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그에 따른 책임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작금의 국가적 위기가 대통령과 일부 책임자들의 퇴진만으로 모두 해결되지는 않을 것 이다. 우리 스스로가 건강한 사회의 가치를 존중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지켜내지 않으면 이와 같은 제2의 최순실 비리게이트는 또다시 반복되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 국민을 직 간접적으로 비통의 충격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참사를 보라.

그 당시의 참회하던 국가적 책임은 온데간데 없이 조직적 음해와 의도적 왜곡으로 갈등에 갇어버린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는 그 취약한 민주사회의 단면을 본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국민이 다시 쌓아야만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모두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거짓으로 칭송할 때 용기 내어 진실을 말한 한 아이가 있었다.

상실의 시대에 용기 내는 자는 분명 많아야하고 그 외침에 국민은 화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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