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스님 칼럼

나무마다 매미소리가 청랑하다. 한여름의 숲은 척박하지 않고 훈훈해서 좋다. 송풍(松風)에 땀이 마른다. 덧대지 않은 자연미는 속세에 젖지 않은 단아함에 있다. 천지만물은 본래 모습 그대로 두어야 아름답다.

‘싫다고 괴롭히지 말며 좋아해도 집착하여 곁에 두려고 애쓰지 말라. 사랑하는 자에겐 사랑과 그리움이 있고 미워하는 자에겐 증오와 원망이 생기나니 사랑과 미움도 다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다.’ 불교 초기경전 <숫타니파타>의 글이다.

고통은 애착과 증오에서 발동한다. 시작은 좋고 싫은 마음이다. 누군가 사랑하고 좋아해도 되지만 집착을 가지며 안 된다. 미워함도 오래 머물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인연에 따라 사랑이 오면 사랑하되 머무는 바 없어야 한다. 집착하면 허물이 생긴다.

우리의 오감(五感)에서 번뇌가 생긴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화기(火氣)가 올라온다. 불은 물로 식히면 좋다. 그리고 생각 그 자체도 번뇌인 까닭에 생각 이전의 나를 찾아야 한다. 생각을 녹여 빈 마음을 만드는 건 지저분함을 청소하고 탁한 것들을 거둬내는 과정이다. 괴로움으로 힘들 때 여명처럼 심신을 게워내면 머리가 맑아지고 상쾌해짐을 느끼게 된다.

<금강경(金剛經)>은 공(空)과 무상(無相)의 교본이다. '공'이란 안이 텅 비었다는 뜻이건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대신 색안경을 벗고 실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춰서 걸림 없는 지혜를 얻자는 말이다. 지혜는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제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살면서 조금씩 익혀가야 한다.

‘공’을 올바로 이해하기란 쉬운 것만은 아니다. 부처님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빠진 자를 경계했다. 즉 범부들의 네 가지 생각(四相)이다. 아상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고, 인상은 '내가 곧 사람이니 축생이나 귀신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중생상은 여러 가지 인연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고, 수자상이란 이 삶을 오래 살 것이란 생각이다. 이 가운데 ‘나’를 생각하는 아상이 네 가지 생각의 근원이다.

'형상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알면 여래(부처님)를 보리라.' 유명한 금강경 사구(四句) 중 첫째 구절이다. 모든 것이 언젠가 없어질 허상이니 현혹되지 않아야 진리의 눈이 열린다는 뜻이다. 둘째 구절은 이렇다. '사물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소리 냄새 맛 감촉과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도 말지니, 아무데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 육조혜능은 이 문장을 듣고 심안(心眼)이 열렸다고 한다.

<문수성행록(文殊星行錄)>에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은 평생 문수보살 기도에 매달렸다. 만년(晩年)에 석남원(현 정선 정암사)에서 기도드릴 때, 한 남루한 노인이 찾아와서 시자(侍者)에게 "자장스님을 만나러왔다고 아뢰어라"고 말했다. 스님은 시자에게 이르기를 "미친 사람이니 멀리 쫓아버려라"고 전했다. 노인은 실망한 나머지 "언제는 오라고 하더니 아상(我相) 있는 자가 어찌 날 만나겠는가"하고는 금빛 찬란한 문수보살로 현신하여 사자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떨쳐버리면 대상인 상(相)도 없어진다. 대상을 버리면 자연히 나도 사라진다. 세상 모든 것은 실체 없는 허상이고 인연법으로 잠깐 왔다가 가는 것뿐이다. 그런고로 실체 없는 환상을 쫓아다니는 삶 자체가 바로 고통의 연속이라고 볼만하다.

내 것을 비우다보면 어느새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보는 시점이 온다. 무엇이든 단순해지면 좋다. 집이든 머릿속이든 복잡하고 생각이 많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심산유곡에서 마음을 풀어보자.

대부도 만블라선원 010-3676-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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