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김유교

“‘누구라도 천사가 될 수 있다’는 게 취지입니다. 작은 경험이나마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취지라면 도와드려야죠. 협조하겠습니다.”

한사코 마다하는 걸 겨우 붙잡았다. 사동 한 공원에서 자원봉사자 김유교(사진) 씨를 만났다.

“기자님 말씀 듣고 나오긴 했지만…너무 쑥스럽네요. 괜히 누가 되진 않을지….”

사연을 가졌지만 겸손했다. 다른 봉사자들에게 누가 된다며 몸을 낮췄다.

김유교 씨는 한 평생 이웃을 섬겼다. 요즘 같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봉사를 하기 전까지 명휘원에서 25년 동안 장애 학생들을 돌봤다.

“아는 형님이 ‘양아치로 살 바엔 무슨 일이라도 하라’면서 소개시켜 준 곳이 명휘원이었어요. 멋모르고 간 게 25년이 됐네요.”

얼떨결에 들어간 곳이 그에겐 운명이었다. 적응이 빨랐다.

“봉사가 운명이었나 봐요. 밥을 흘리며 먹는 학생들의 모습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아이들과 쉽게 친해졌습니다.”

특수학교에 들어와 보니 ‘사회에 봉사가 절실함’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 할 수 없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나도 많았다.

“전혀 (봉사에)관심이 없었죠. 근데 명휘원에 와 보니 그게 아니에요. 아이들의 어려움이 하나둘 눈에 보이니 이웃에게도 관심이 갔습니다.”

퇴직한 그 길로 섬김에 발을 들였다. 양로원, 장애인 복지관, 무료급식소 등을 찾아다녔다.

대가 없이 몸담았지만 봉사는 그에게 되돌려줬다. 슬픔을 이겨내게 하고 행복을 안겨다줬다.

“안 사람을 병으로 떠나보내고 큰아들마저 잃게 되었어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정신없이 남을 돕다 보니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아요. 봉사가 있어서 잘 이겨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둘째 아들과 막역한 사이가 됐다’는 게 봉사가 준 가장 큰 선물이다. 그에게 아들은 ‘동반자’가 됐다.

“제가 봉사를 갈 때면 항상 아들이 따라 나서요. 함께 땀 흘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 있다 보니 허물없는 사이가 됐습니다. 요즘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사라졌잖아요. 봉사가 있어서 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됐어요.”

요즘 그의 아들은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봐오던 봉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랑스러워 그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김유교 씨는 마냥 행복해진다.

“봉사. 알고 보니까 나를 위해서 하는 거 같더라고요. 봉사를 하면서 기쁨도 얻고 인생을 사는 재미가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을 알면 좋을 텐데요….”

“첫 발을 들여 놓으면 정말 쉬운 일인데. 그게 어려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그리 활성화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걸 안겨준 감사함이기에 더 어려운 곳, 더 도움이 필요한 곳에 향하고 싶다.

“남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은 사람이잖아요. 남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소외된 곳에서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아직 그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요. 계속 찾아볼 거예요. 건강이 허락되는 한 섬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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