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하 안산통일포럼 사무국장

“이거(인터뷰) 안 하면 안 될까요? 저보다 훨씬 봉사 열심히 하시는 분 많은데…. 너무 쑥스러워요.”

한사코 사양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놓치고 돌아선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고집을 부렸다. 마치 곧 찾아올 가슴 따뜻함을 예견이라도 한 듯.

박경하 안산통일포럼 사무국장(사진)은 2012년부터 안산통일포럼에 몸담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준비 없이 맞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치․경제․문화․복지 등 다양한 가치가 한데 어우러진 통일포럼이 마음에 들었다.

“통일포럼이 발족한 게 6․15공동선언 직후인 2000년 8월이었어요. 예고 없이 찾아올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이 합쳐져 통일포럼이 탄생했습니다.”

시민들에게 통일을 가르쳤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어르신들을 섬겼다. 매년 정기적으로 6․25참전용사를 사무실로 모시고 시간을 보냈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웃을 섬기는 단체가 되고 싶었다. 정기적인 ‘통일교육’뿐만 아니라 통일포럼 활동가들과 함께 농어촌 봉사, 사랑의 밥 차, 소외이웃 무료급식 봉사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만원의 행복’이라는 사진작가 동아리에도 몸담고 있다. 동아리 원들과 함께 사진 봉사를 한다. 어르신들이나 다문화 가정, 장애우 가정에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올해에만 무려 53개의 장애우 가정의 가족사진을 찍어줬다.

“취미를 가지고 이웃을 섬길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가 됩니다. 사진을 받아든 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느냐는 물음에 ‘거창한 계기랄 건 없다’고 답한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당연한 게 됐다’고 한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어려운 이웃을 그냥 보내시지 않으셨어요. 그걸 보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 있으면 제가 막 행복해져요. 기자님과 말씀을 나누는 이 순간에도 뭔가 가슴 뭉클한 게 느껴져요. 일단 제가 너무 행복하니까 더 열정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장애를 입은 조카를 대하며 도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조카가 지체장애인이에요. 하루는 조카를 씻기려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내 안에 가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봉사자의 역할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켜보다 안 됐을 때 부축해주는 게 옳은 봉사 같아요.”

섬김을 통해 ‘행복’을 얻었다. 이웃에게도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봉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특히 아이들이 봉사를 통해 꿈을 찾기를 바랐다.

“꿈이 없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저는 포럼을 찾는 아이들이 ‘커서도 이 사람들(봉사자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비전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말해요 ‘내가 너희들을 초대한 건 너희 눈을 틔워주고 싶어서’라고.”

‘내 옆집부터 필요한 것을 나눠라!’ 그가 강조하는 봉사 입문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이웃에게 필요한 걸 나누나 보면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져요. 자연스럽게 다가올 때, 그것에 따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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