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석 안산 늘해랑 봉사단 회장

“궂은 날씨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시장하실 텐데 식사 먼저 하시고 말씀 나누시지요.”

교문 앞에서부터 과한(?) 영접을 받고 백만석 안산 늘해랑 봉사단 회장(사진)을 만났다. 그는 현재 신안산대학교에서 보안관리직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격일로 근로와 봉사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관리직)일이 본업이고 봉사가 부업인 셈이에요. 더 많은 물질로 이웃과 나누고 싶어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웃 섬김은 안산 월남참전용사전우회 총무를 맡았을 때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한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봉사에 뛰어들게 됐다.

“저도 ‘지체언어 장애 1급’이거든요. 전쟁 상흔이에요. 하루는 초지장애인복지관에 방문했어요. 장애인들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어 무작정 봉사에 뛰어든 게 지금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수많은 섬김, 수많은 단체를 거쳐 갔다. 독거노인 무료급식 봉사, 장애인 활동 봉사, 지체장애인 가사도우미, 교통 장애인 협회 봉사부장, 장애인 정보화협회 이사,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 등 이웃의 관심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그가 서 있었다. 그 중 ‘활동 도우미 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활동보조를 맡게 된 한 장애인이 있었는데, 처음 그 집 문을 열 때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방에 술․담배가 가득했었거든요. ‘그냥 나올까’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마저 포기하면 사회에서 늘 버림(?)만 받게 될 것 같더라고요. ‘술․담배하면 다신 얼굴 안 보겠단’ 모진 말로라도 그를 잡아줘야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술․담배를 완전히 끊더라고요. 조금은 바로 잡아 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이런 헌신 덕이었을까. 사회는 그의 노고를 기억했다. 감사했다. 국회의원표창만 10번, 안산시장상 5번에 도지사표창까지 받았다. 자원봉사상의 꽃이라 불리는 ‘안산시 자원봉사대상’도 개인 부문에서 2회나 수상했다. 하지만 정작 백만석 회장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지난해에 안산시에서 국민훈장 추천이 와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아쉬운 마음 같은 건 없었고, 단지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이웃을 섬기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많은 봉사를 하려다 보니 컴퓨터 능력이 필요함을 느꼈다. 결국 열심히 공부해 컴퓨터 자격증을 얻었다.

너무나도 많은 봉사를 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간직해 온 조그마한 꿈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하겠어요. 지금도 제 때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이 많잖아요. 조금 더 생활이 여유로워지면 꼭 사업을 해 이웃을 돕고 싶어요.”

“이젠 저보다 조금이라도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무조건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요. 이젠 봉사가 제 운명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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