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옆집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제법 큰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저녁 무렵 집에 와서는 문을 부수다시피 발길로 걷어찬 것이다. 필경 누가 집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열지 않으니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문을 걷어찼다. 아무리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도 무슨 말 못할 일이 있겠다 싶어 내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내를 통해서 알아보니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었다. 아들이 평소 공부를 잘했다. 그러다보니 그 부모는 당연히 수능시험을 잘 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가 생각한 만큼 성적이 안 나왔던 모양이다.

사건의 발단은 그 아이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아버지한테 보냈는데 그 내용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욕설이었다. 그러니 그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난리를 칠 법도 한일이었다.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달려와서 문을 두드렸으나 그 아들은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열어주질 않고 아버지가 난리를 치자 아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이 출동해서야 사태가 겨우 진정이 되었다. 이쯤 되면 그 집안의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할 만하다. 아버지에게 그런 욕설을 한 아들이나 성적이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아이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은 아버지, 누가 낫고 누가 못하다고 할 수가 없다.

이제 중고등학교에서는 중간고사가 곧 시작된다. 아이들은 이때가 되면 정신이 예민해지고 우울해 한다. 시험도 시험이려니와 그 결과가 나올 때쯤 되면 아이들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요즘 시험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시험 범위도 많고 과목수도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온종일 학교에서 시달리고는 또다시 학원에 가서 자정이 넘도록 공부를 한다. 공부에 취미가 없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정말 죽을 맛일 게다. 그러다보니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한 학급에 한두 명씩은 꼭 있다.

요즘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학원에 보낸다.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원에 과학고반이 생기고 민족사관반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출근을 하는데 사립 초등학교 1학년 소집 일에 맞추어 학원에서 학부모들에게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보니 대학입시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떤 학부모는 자기 아이가 모두 100점을 맞았다고 신이 나서 자랑을 한다. 아이가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한다. 날마다 아이를 붙들고 엄마가 공부를 시킨 모양이다. 두툼한 안경을 쓴 그 아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는 모습이 그저 불쌍하다. 이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기 바쁘게 엄마 손에 이끌려 두꺼운 안경테와 흐느적거리며 영어 학원으로 수학 학원으로 공부를 하러 가는 저 아이들의 발걸음 속에 우리의 슬픈 미래가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 입학을 앞둔 고 3 수험생이 ‘왜 일등을 못 하느냐’ 며 골프채로 체벌을 가하고 폭언을 하는 어머니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범행을 저지른 아들이나, 일등을 강요하다 아들에게 흉기로 살해당한 어머니 모두 성적 지상주의 풍조가 가져 온 ‘희생양’이다.

요즘 온 세상이 꽃으로 물들었다. 개나리며, 벚꽃이 어찌나 화사한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화사한 봄이 왔는데 아이들 마음은 여전히 춥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