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들다보니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이름을 지울 사람은 지우고, 평생 만나야 할 사람이다 싶으면 별도로 표시를 해 두게 된다. 예전에는 너나없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열정도 없다. 앞으로는 이왕이면 진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이러다보니 흥미로운 일은 수첩에 기록되었던 사람들 중에 사회적으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우쭐해지는 감정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말이야, 그 사람 잘 알아!‘ 이런 말을 하면서 으스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는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요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중에 정치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인들이라 해서 그들의 성품이나 인격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고, 성품이나 인격이 훌륭하다. 근데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 그들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별게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오래도록 친구로서의 우정을 나누며 만나기에는 적합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과 친구로서 만나다보면 내가 그에게 다소 도움이라도 될 만한 여건이 되면 그나마 연락을 취하고 관계를 가지려 하지만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볼 것 없이 관계를 멀리 한다는 특징이 있다.

얼마 전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정치인을 만나기로 했다. 나는 마음이 들떴다. 과거에 함께 등산도 다니고, 서로의 집에도 오가며 우정을 나누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미진한 힘이나마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서 도착했다. 그런데 상대방의 태도가 예전하고는 사뭇 달랐다. 다짜고짜 묻는 말이 “지금 xx교회 나가요?” 이사를 해서 그 교회에 출석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를 친구로 만나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에 나는 친구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데 필요한 한 표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이제 그 교회 교인이 아니니 나는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씁쓸했다.

정치를 하려면 우선 따스한 마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사람을 대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이러한 사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달이면 총선을 치르게 된다. 물론 정치를 하려면 국가관이 뚜렷하고 소신껏 자신의 주관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간미가 있고, 그래서 사람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배반하지 않고, 올바른 정치를 한다. 하지만 진실하지 않은 사람을 뽑으면 자신의 잇속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후보자 가운데 과연 ‘저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진실 한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그런 인물이 꼭 당선되었으면 한다. 인간미 있는 정치인이 그립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