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 길가에, 어느 날부턴가 일흔이 훨씬 넘어 뵈는 허리가 구부정한 노부부가 리어카에 폐휴지를 가득 싣고 다니더니 아예 고물상을 차렸다. 동네 사람들은 그 부부가 폐휴지를 수거하는 것을 보고는 폐휴지가 생기면 그곳에 갖다놓곤 한다. 나도 폐휴지가 있을 때마다 그 부부가 가져가기 좋도록 늘 그 장소에 갖다놓기도 하고, 때로는 버릴 책이 있거나 하면 그분들께 전화를 하여 가져가도록 말씀을 드리곤 한다. 날씨가 쌀쌀한 이른 아침이었다. 할아버지가 무거운 리어카를 간신히 끌고 지나가기에 집에서 쌍화탕 한 병을 들고 가서는 드시라고 했더니 한사코 사양하시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운동 삼아 하는 거야’ 라며 나에게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춥거나 덥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거나 아랑곳 않고, 그 부부는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수집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할아버지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 날은 다른 날과는 달리 리어카가 텅 비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보란 듯이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한 여섯 장쯤인가 들더니 손으로 탁탁 치면서 ‘오늘 밤은 우리 할망구와 동태찌개를 먹을 수 있게 됐어.’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 하시는 표정이 어찌나 밝고 환한지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가진 것이 없음을 탓하며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나를 돌아보니 그 할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집에 가면 아내가 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는 편안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다가는 안락한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출근을 해서는 아이들을 가리치며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내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때 그 노부부는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며 땀을 흘리곤 했을 것이다. 그렇게 힘겹게 번 돈으로 동태지개를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해 본 일이 드물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할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행복이란 내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 선천적으로 사지가 없이 태어났으면서도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멀쩡한 사지를 타고 나서도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품고 늘 우울하게 사는 이들이 있다. 차마 바라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고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이가 있는 가하면, 자신의 아토피성 피부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는 이도 있다.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을까? 한 때는 다들 부러워하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다.

사람 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만은 없는 듯하다. ‘인생의 아리랑곡선’을 그리다보면 인생이 즐거울 때가 있고, 반면에 괴로울 때도 있다. 인생이란 길을 걷다보면 괴로움과 즐거움이 교차되는 것이다. 언제나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언제나 괴로운 것만도 아니다. 그러니 설령 괴로운 일들이 있다하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비가 개인 후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행복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온종일 힘겹게 리어카를 이끌며 번 돈으로 늙은 아내와 동태찌개를 먹을 수 있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며 사는 할아버지처럼 작은 일에도 만족하며 즐거워 할 수 있다면 진정 그러한 사람이 행복한 부자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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