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의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그런데 그 시절이 그립다. 그 고통스럽던 시절이 왜 그리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혹독했던 겨울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 시절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가 하늘에서 펄펄 내리면 방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머리를 하늘로 대고 눈을 받아먹으며 희희덕거리고 눈 위에 사진을 찍는다며 드러누웠다. 온종일 눈사람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을 했다. 지금처럼 두툼한 털옷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얇은 스펀지가 들어 있는 비닐로 된 옷을 걸치고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로 눈밭을 뛰어 다녔다. 발은 꽁꽁 얼고 손은 동상에 걸려 퉁퉁 부었다. 퉁퉁 부은 손등은 갈라지고 그 틈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논에 얼음이 꽁꽁 얼면 썰매를 타고, 바람이 부는 날엔 손을 호호불며 연을 날렸다. 썰매를 타다가는 얼음이 녹아 물속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논가에 군불을 지펴놓고 옹기종기 모여 불장난을 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다 지나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먼발치서 할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할머니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무렵이면 굴뚝에선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할머니는 화로에 구수한 된장찌개를 부글부글 끓었다. 온 가족이 모여 옹기종기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된장찌개에 밥을 먹었던 기억은 눈물이 나도록 정겹다. 어둠이 짓게 깔린 산골의 저녁. 희미한 등잔불 아래 빨간 화로 불빛이 이글거리고 다 찌그러진 냄비엔 된장찌개기 끓고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는 방안을 진동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그 다음 날도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 겨울의 추억은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친구들과 어울려 토끼몰이를 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눈이 하얗게 쌓이고 며칠이 지나면 토끼는 먹을 것을 찾아 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토끼를 발견하면 우리는 산비탈을 뛰어서 토끼의 뒤를 좇았다. 지친 토끼가 굴속으로 들어가면 솔가지를 굴속으로 밀어 넣고는 불을 지폈다. 썰매를 타고 연을 날리고, 토끼를 쫓고, 논가에 불을 지피고, 동상에 걸린 손발과 등잔불 아래서 발갛게 빛나던 화롯불. 이런 추억들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잊혀지질 않는다. 마음속에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제 눈이 내리고 온천지가 하얗게 덮일 것이다. 그 눈 속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내가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듯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먼 훗날 그들의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라고 어느 시인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하이얀 눈이 내리는 날 외로운 이들을 만나러 어느 산골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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