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 년 전에 최전방 강원도 골짜기 포병대대서 함께 근무하던 송 일병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나는 그를 송 일병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내가 제대할 무렵 그의 계급이 일병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 졸병이긴 했지만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고, 법대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입대한 매우 영특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난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앞으로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겠다는데 모습이 여간 초췌한 게 아니었다.

그는 군에서 제대하고 덕소에 큰 음식점을 차렸다. 십여 년 전에 그의 음식점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음식점 앞에는 큰 호수가 있는 아주 멋진 집이었다. 그때 내 기억으로는 손님도 많고, 돈을 많이 벌었겠다 싶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그의 말에 의하면 자동차 한 대에 의지해서 ‘만행의 길’을 떠나는 길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몇 해 전에 대장암선고를 받고, 경영하던 음식점을 처분하고 빚잔치를 하고 나니 수중에 돈 한 푼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그들과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라 했다. 나는 그와 밤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새벽녘이 되었고, 그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차에 가서 잠을 자겠다고 하며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어느새 그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그를 보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내 나이 어느덧 오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삶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어찌나 세상이 빨리 변했는지 돌이켜 보면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 불을 지피고, 한 겨울에도 어머니는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고, 뒷간에 앉아 볼일을 본 후에는 지푸라기로 뒷처리를 하고, 날마다 물지게를 지고 샘으로 물을 길으러 가곤 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을 우리는 경험하며 살아왔는데 불과 사오십년이 채 안 되어 우리는 지금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검색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나’의 정체성조차 잃어버린 채, 오직 그 빠른 흐름에 편승해서 허겁지겁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리고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니 지난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식구들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만행’을 한다는 송 일병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그가 어디로 어떤 삶을 찾아 떠나는지 모르나 다시 돌아 올 무렵, 그를 다시 보게 되는 날에는 지금보다 그의 모습이 훨씬 밝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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