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산골마을 외딴 집에서 살았다. 외딴집에서 살다보니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 중에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인호가 있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격은 컸지만 하는 짓이 바보스러웠다. 그러다보니 그는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다. 늘 외톨이였던 인호는 나에게 종종 놀러왔다. 집을 나서면 문 앞에서 기웃거리거나 개울가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왜 집으로 들어오지 그랬냐고 하면 멋쩍은 표정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 시절, 산에서 뛰어 놀거나 용등바위가 있는 계곡으로 쇠꼴을 먹이러 가는 일이 나의 주된 일과였다. 그럴 때마다 인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뒤를 따라오곤 했다. 풀이 많은 곳에 소를 풀어놓고 용등바위 아래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멱을 감고 있으면 인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꼴을 먹였다. 나는 그런 인호가 고마워서 할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이며 감자를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인호와의 추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 식구들이 도시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인호는 못내 서운해 하며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방학이 되면 곧 올 거라며 그를 위로 하였다. 나는 방학을 하기 바쁘게 내 고향 세동리로 달려갔다. 한나절을 걸어야 하는 세동리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할머니는 동구 밖 둥구나무 아래에서 아침 일찍부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먼발치에서 인호가 빙긋이 웃으며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후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는 힘이 부친다며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러다보니 세동리를 찾는 일은 더욱 뜸해졌다. 명절 때면 한 번씩 찾아가곤 했는데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고향집은 허물어지고 돌담만이 흔적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고향에 가더라도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기 바쁘다보니 인호를 만나기도 어려웠거니와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가 집을 떠났다는데 남의 집 머슴으로 갔다는 소문도 있고, 어떤 이는 서울로 갔다고도 했다.

여러 해가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내 고향 세동리도 모습이 많이 변했다. 마을에 살던 친구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났다.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개울에서 물고기들이 뛰어 놀던 예전의 마을이 아니었다. 진달래가 피던 산허리로는 큰 도로가 나면서 자동차의 굉음이 들려오고, 물고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인호와의 일도 까마득하게 잊혀졌다.

그러던 얼마 전의 일이다.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대전역으로 갔다. 광장을 지나는데 어느 봉사단체에서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고 있는 거였다.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기 위해 길게 열을 지어 섰는데, 언뜻 내 눈에 낯익은 모습이 들어왔다. 인호였다. 나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의 팔을 붙들고는

“너 인호지? ”

나는 정신없이 말했다. 그러자 인호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반가워서 그를 붙들고 막 떠들어대는데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예 예” 하며 웃기만 한다. 나는 열차 시간이 촉박했지만 가까운 음식점으로 그를 이끌고 갔다. 따스한 음식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국밥을 한 그릇을 시키고는 갈 차비만을 남긴 채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주고는 부리나케 열차를 타기위해 대합실을 향해 뛰었다.

그 후 나는 대전역 광장을 지날 때면 혹시나 그를 볼 수 있을까 해서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다시는 그는 만나질 못했다

김지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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