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돋보기 - 안산온마음센터 한 창 우 센터장

트라우마는 우리말로 ‘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외상은 몸이 다쳤을 때 많이 쓰는 용어이지만 여기서의 트라우마는 신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외상, 충격을 의미한다.

흔히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같은 집단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재난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떠올리기 쉽지만,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트라우마를 입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발견하곤 한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성폭력, 따돌림 등 개인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트라우마 증상은 대부분 회복되지만 잘 관리하지 않으면 정신적 어려움이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큰 피해를 당한 유가족들이 안산에는 무척 많다. 따라서 ‘안산온마음센터’는 보건복지부와 경기도가 40억을 지원해 설치됐고, 현재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현재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안산온마음센터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창우 센터장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행복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온마음센터’의 바램입니다”

 

Q. 어떻게 설립됐는지

▲ 지난해 4·16 참사 직후 경기도와 안산시는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긴급 설치했습니다. 지원단에는 경기도정신건강증진센터와 안산시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비롯해 긴급동원 된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부처와 함께 재난 상황에 대처하며,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시는 유가족 분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상담, 설명, 안정 등을 목표로 심리지원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이후 5월부터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7월부터는 ‘안산온마음센터’를 병용하고 있습니다.

 

Q. 참사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정도는

▲생존자들 중 상당수는 사고 당시 상황이 자꾸 떠오르거나 꿈속에서 당시를 회상하는 재경험,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는 과각성 등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것을 회피하게 되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기도 합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우울, 무력감을 느끼고,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고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는 사고 전의 직장생활로 돌아갔다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심리적 어려움이 악화돼 다시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제 때 해소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신체적인 문제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식욕이 떨어져 체중이 감소하고, 대표적인 스트레스성 질환인 소화기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의 증상 발생이 늘어났습니다. 알코올이나 담배에 의존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Q. 어떤 심리지원을 하고 있는지

▲ 현재 우리 센터에는 정신과 전문의 5명을 포함해 총 33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하며, 크게 4가지 영역의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전문 요원이 직접 찾아가는 방문 상담 서비스. 이것을 사례 관리라고 합니다. 직접 대상자 분들을 찾아가서 만나 뵙고, 기본적인 심리지원이나 생계 지원을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대상자 분들께서 저희 센터에 방문하셨을 때, 아주 기본적인 심신 이완 요법부터 시작을 해 아주 전문적인 심리 치료까지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증상의 심각정도에 따라 적절한 심리 지원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소아나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 그리고 우리 안산 시민들이나 국민들을 위한 지역 사회 심리 서비스를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Q. 1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 심리상태는

▲ 세월호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참사 1년을 보내면서 심리적으로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기념일 반응’은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돌아오면 그 당시와 비슷한 감정 상태와 신체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또 유가족들 중에서는 새로 핀 꽃을 보면서 1년 전 참사와 가족의 죽음을 떠올리게 돼 괴로워하는 분들도 있고, 우울감과 그리움 등의 복잡한 감정들을 느낀다고 호소합니다. 생존자들 역시 1주기가 보내면서 사고 당시의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 불안감을 느끼고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심해지는 등의 기념일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월호 피해자들은 사고로 인한 후유증, 가족을 잃은 슬픔 뿐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의 감정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를 끌어올려야 비로소 분노와 죄책감을 일부 내려놓을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가 늦춰지면서 회복급성기의 심리 상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Q. 회복 정도는 어떤지

▲ 세월호 피해자들의 경우 다른 재난 피해 사례에 비해 더딘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형적인 트라우마 반응 이외에 분노와 불신의 감정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배를 끌어올리는 것이 희생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중요한 과업입니다. 이것이 해결되기 전까진 죄책감에 마음 편해지는 것에 저항하고 있는데, 이 해결이 늦춰지면서 여전히 분노하고 불신하는 급성기 심리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외상을 경험한 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비롯해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남용 등 여러 가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라도 사고 후 수개월, 수년이 지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나타날 수 있고 5년 이상 지난 후까지도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는 한시적인 기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치료와 관찰이 필요합니다. 또한 안전한 환경에서 상담자와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치유적 동맹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과 지원과 필요합니다.

 

Q. 센터 운영에 위협도 존재하는데

▲ 맞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안산에 설립하기로 한 ‘국립트라우마센터’ 건립비를 전액 삭감했습니다. 사실 ‘온마음센터’는 ‘국립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는 동안 피해자들의 심리지원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기구라 할 수 있는데, 복지부가 되레 ‘안산트라우마센터(안산온마음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별도의 국립트라우마센터 설립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보건복지부가 ‘안산온마음센터’를 경기도나 안산시로 운영을 이관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명연 의원께서 ‘국회 증액안으로 반드시 확보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고 계십니다.

트라우마센터는 단순히 세월호 피해자만을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가주도의 트라우마 치료와 연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시설입니다. 정치권 뿐 만 아니라 시민여러분들께서도 보다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Q. 위·수탁 계약 방식인데, 사업 연속성에 문제는 없는지

▲ 통상적으로 공공서비스의 위탁 계약의 경우 그 기간이 2~3년인데 반해 우리센터는 1년에 불과합니다. 현재 안산시와 고려대 안산병원이 위·수탁 계약관계를 맺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물론 우려하시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수탁기관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양성된 전문 인력과 노하우 등이 완벽하게 인수인계 되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약 한달 가량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심리지원의 연속성과 계속성, 피해자, 유가족들과의 관계성 등을 고려했을 때 계약기간이 짧은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저희만 운영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일, 다른 기관이 운영하게 되더라도 저희는 피해자와 유가족 분들을 위해 마땅히 협조할 겁니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효율적으로 심리지원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동안의 노하우를 모두 제공하겠습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2014년 4월 16일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326명의 소중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픔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험하고 가파른 길을 간다면 아마 그 길은 외로움과 두려움이 더 해져 더욱 힘든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누군가 그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걸어 준다면 용기와 힘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가끔은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혹여나 혼자 힘든 길을 걷는 이웃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손길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 아픔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행복은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은 우리 안산온마음센터의 바램입니다.

일부 시민들께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오해로 피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상처를 주시기도 합니다. 이분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도, 금전적 요구도 한 적이 없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신 너무나도 슬픈 사연을 가진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이분들께 보다 관심 가져 주시고 따듯한 위로의 말씀 한마디씩 건네 주워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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