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상 순 / 안산우리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환자 A는 술 냄새를 심하게 풍기며 구급차로 내원하였다.

말이 없고 친구도 없는 A는 혼자서 모텔에 들어가 술을 마시다가 어머니에 의해 입원 하였다. A는 키만 훌쩍 크고 비썩 말라 있었다. 치료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술 마시는 이유를 묻자 ‘외로워서...’ 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A의 아버지는 거의 날마다 술을 심하게 마시고 술을 마시면 어머니에게 술 주사가 심하였다. 그러다가 A의 아버지는 결국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자다가 저체온으로 돌아가셨다. A의 할머니도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여 어머니에게 관대하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견딜 수 없어 A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하였다. 어머니는 재혼한 남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A를 챙기지 못하였다. A는 어머니로부터 적절히 사랑 받고 보호 받아야 할 시기에 다정다감하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할머니 밑에서 지내게 되었다. A는 주변에 마음을 드러내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없고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몹시 외로웠고 외로움을 이길 수 없어 술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정신과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충분히 사랑 받아야 할 시기에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성격 등 문제가 많은 아이로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아이의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의존대상이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신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 때 어머니 역할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상처(트라우마)로 남아 일생을 남을 신뢰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살게 된다. 마음속에는 적개심이 깊게 자리잡을 수 있다.

환자 B는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적절히 돈을 벌지 못하니 어머니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일로 뛰어 들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하게 되니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돈 못 버는 아버지는 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고 장사하고 돌아온 어머니에게 의처증 증세를 보이니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거칠어져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퍼부었고 이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성격이 모두 남을 믿지 못하고 괴팍하였다. B는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는 아들만 챙기고 아들만 공부를 시키고 자신은 공장에 다니며 야간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며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하였고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음식에 약을 탔다며 식사도 하지 않았고 과일을 챙겨주고 죽을 끓여 주어도 감사할 줄을 몰랐다. 이렇게 생존을 위해 절대적인 존재인 어머니의 사랑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그 심정이 얼마나 절망적일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지난 주 서산에 있는 마애불의 미소를 보고 왔다. 햇살에 따라 백제인의 미소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햇살이 환하게 비취자 백제인의 미소도 활짝 웃어 보였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백제인의 미소처럼 넉넉한 웃음을 웃어준다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랄 것 같다.

A의 어머니께서도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A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겠다고 하신다.

B의 어머니도 딸의 분노를 실컷 들어주며 다독여주시겠다고 하였다.

백제인의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갈등과 고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안나 프로이드는 정신치료란 어린 시절의 갈등이 좀 더 성숙하고 견디기 쉬운 갈등으로 바뀔 뿐이라고 하였다. 프로이드는 성숙한 인간이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자아를 찾아 일 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 하였다.

저 붉게 물든 낙엽을 바라보며

이 가을 나는 성숙한 인간인가? 나는 행복한가?

깊이 통찰해 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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