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서 경기도의회 의원

‘생활임금’ 도입을 제안하며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이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의 존엄성과 행복이란 게 과연 이것만으로 충족되는 것일까. 옛날 어려웠던 시절 보릿고개에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요즘 시대에는 만족할 수 없는 일 일터. 그래서 나온 새로운 임금개념이 ‘생활임금’이다.

생활임금은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영국, 심지어는 방글라데시와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꽤 오래전부터 제도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3년 연방정부 차원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만인 1994년 볼티모어 시에서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한 이후 지금까지 100개 이상 자치정부의 조례제정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하버드대나 버지니아대 등에서는 대학생들이 캠페인을 벌여 열악한 근로여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학내 청소미화원 등 용역업체직원들이 생활임금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하기도 했다.

영국은 런던 시내 권역과 시외 권역을 구분해 생활임금을 정하고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게까지 확산시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논의가 확산돼 서울시 성북구와 노원구에서는 올해부터 산하 시설공단의 청소경비직 150여명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하는 시책을 추진 중이다.

최저임금이 1인 노동자의 최저생계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인데 비해 생활임금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생계는 물론 교육, 문화, 여가 활동 등 실질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주자는 것으로 최저임금의 150% 또는 지역의 경제여건이나 물가수준 등을 고려하여 별도로 산정하고 있다. 해마다 고시되는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고, 우리나라가 사회경제적으로 안고 있는 가장 큰 아픔과 질곡이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저임금문제라는 것을 감안하면 생활임금이 저임금 및 임금격차해소, 분배구조개선에 일정정도 기여할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여지가 없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체계적인 연구나 법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해서는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며칠 전 나는 공공부문에서부터 생활임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도 생활임금 조례를 제안하고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때 많은 전문가들이 생활임금 도입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여러 사례와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는데 부천시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주목을 끌었다. 부천시에서는 이미 1년 전부터 노·사·민·정 협의회에서 생활임금조례를 성안해 조만간 입법할 예정이다.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169만 명에 달하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자들은 정규직 대비 31.8%로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례로 최저임금의 150%를 생활임금으로 정할 경우 시급 58,320원인데 경기도 본청과 26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 고용된 기간제 및 무기계약직(단순노무)임금은 시급 41,000원대에 불과하다. 중앙정부에서 공공부문 계약직 직원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안산시도 경기도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산시는 반월·시화공단 1만 5천여 개의 기업에서 26만여 명이 근로하는 노동자의 도시이다. 공공부문에서부터 생활임금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민간노동시장에까지 확산시키는 시책을 적극 추진하길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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