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 / 논설위원

소비지향 사회와의 결별

리처드 포스터의 글 ‘단순한 삶’을 읽다보면 우리가 그동안 소비지향 사회 속에 살면서도 정작 감각 없이 살아왔는가 반성하게 된다. 광고업자들의 교묘한 말장난과 모델들의 유혹된 눈길 그리고 화려한 외모에 현혹되어 쓸데없는 물건 구입에 대책 없이 지갑을 열고 분별없는 지출을 해왔는가 돌아보게도 된다.

소비지향 사회와의 결별은 그래서 힘들지만 반드시 가야할 과정이기도 하다. 속임수가 뻔 한 광고와의 결별.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매체와의 즐겁고도 당당한 이별 선언 그리고 행복한 반란에 합류하는 힘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매년 새롭게 출시되는 신차 모델에 마음을 빼앗기면 월세 집에 살면서도 고급 승용차의 소유욕에 빠지게 된다. 10년 이상을 탔어도 잘만 달리는 자동차를 보라. 대형차가 아닌 소형차여도 당당한 사람들의 여유를 보라. 그들의 당당함은 없는 자의 거만이 아닌 자족의 여유가 담긴 당당함이다.

광고를 보았을 때, 사고 싶은 욕구에 휩싸일 때 일주일을 기다려 보라. 그래도 사고 싶으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욕구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그라진다. 홈쇼핑의 얄팍한 상술은 늘 시간이 임박했다느니 아니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느니 혹 품절되기 일보직전이라는 단어로 중독자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삶을 생각할 때 양보다 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에 만족하며 소유의 유혹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은 고독과 침묵의 삶을 즐긴다. 단순한 삶의 과정을 음미할 줄 안다. 바깥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살줄 안다.

음악을 즐기며 여행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줄도 안다.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슬로시티의 길을 걷는다거나 바람을 따라 저녁 시간을 보낼 줄 안다. 행복은 섬기며 자족하는 데서 온다. 인생의 목표는 양이 아닌 질적인 행복에서 온다.

배낭 하나 둘러매고 동네 공원을 천천히 걷는가 하면 자전거를 타고 갈대밭을 도는 것처럼 장비가 필요 없는 운동을 할 때 우리는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다.

때론 가공 식품을 멀리하고 화학조미료와 인스턴트 식사를 피한다. 텃밭에 농사를 짓는 도시 농부가 한번 돼 보라. 식구들과 먹고 남은 것은 지역민들에게 나눠줘라. 그렇지 않으면 저렴하게 이웃에게 팔라. 나도 이웃도 신선하고 깨끗한 채소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이다. 남해에는 개나리와 매화꽃이 벌써 만발했다. 봄은 밑에서부터 위로 달려오고 있다.

채무불이행자의 빛을 탕감해준다는 소식이 요란하다. 도덕적 해이는 어떻게 하고 또 빛만 탕감해준다는 것이냐는 소리도 들린다. 새벽이 사람들로 유난히 분주하다.

고난주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적 죽음과 영광스런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삶의 분주함과 당분간 결별하고 침묵 속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난의 길에서 희망의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종교적 단순함이나 경제적 단순함이 주는 평안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도 보인다.

산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마음이 설렌다. 눈길을 빼앗긴다.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과 새로운 삶의 기대로 마음 설레는 날들이 오고 있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