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 / 논설위원

상상력이 꿈이 되는 세상

은하철도 999는 50대라면 누구나 친근한 애니메이션이다. 지금은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이 작품은 한 작가의 상상력에서 태어난 아주 무명의 작품에 불과했다.

미야자와 겐지. 그의 가정은 일본의 구석진 농촌마을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이었다. 다만 농촌마을의 전당포라는 것이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을 전당잡아 배를 불리는 다분히 부르조아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 늘 그를 괴롭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살고 싶지 않다는 그의 생각은 결국 아버지집을 박차고 나온다.

초가지붕 오두막을 짓고 그는 농사를 지으며 농민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농민을 잘 살게 하려는 그의 노력은 밤새는줄 모르는 연구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시대를 앞서기는 했지만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고단한 농부들을 위한 첼로 연주회, 시 낭송회, 연극 또는 채식 위주의 식생활 등이 철저히 외면당했다.

지금이라면 호응이 좋았을 시도들이 농민들의 싸늘한 외면을 당하고 그는 냉소와 따돌림 속에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한 권을 동화집을 냈다. 그러나 대륙 침략 전쟁에 분주했던 일본에서 그의 동화책을 사본 사람은 모두 다섯 명에 불과했다.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외로움 삶 속에서 37세의 젊은 나이의 겐지는 결국 폐결핵으로 쓸쓸히 죽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메모와 원고 속에서 한 편의 동화 원고가 발견된다. 은하 철도 999의 원본이 된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원고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은하철도의 밤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로 만들어진다. 또한 그의 책은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 중 하나가 됐다.

은하철도 999는 어린 소년이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별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기계주의, 제국주의, 계급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1981년 한국 사회에서 은하철도 999가 방송되었을 때 우리는 이런 이념적이고 사회 비평적인 면보다는 메텔과 철이를 통해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경험했다. 결국 겐지라는 작가가 농민들 속에서 시를 낭송하고, 연극를 보고, 첼로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처럼 은하철도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감을 심어줬다.

몽상의 시학이라는 책이 있다. 시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상상력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상상력이 밥이 되고 떡이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인 혹 소설가 나부랭이들이 할 일 없이 꿈꾸는 아주아주 하잘 것 없는 그런 것들이 밥이 되고 떡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적자의 문턱에서 문을 닫을 뻔했던 남이섬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연간 2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실상부한 명품 섬으로 만든 이는 동화작가 강우현이다. 대기업 임원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앞다투어 남이섬의 경영비법을 배우려고 줄을 선다고 한다. 역발상 경영, 청개구리 경영 등 자본주의 용어의 새로운 탄생도 한 작가에 의해서 탄생됐다.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찾아오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나 기업체를 만드는 모든 일에도 상상력이 필요한 사회가 됐다. 스토리를 만들고 아주 작은 것에서 감동하고 즐거워하게 만드는 일. 곧 상상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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