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 / 논설위원

말 엉덩이와 열차선로의 폭

경제사학자 폴 데이비드는 “어떤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후에도 그 길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했다.

관습주의. 항상 틀에 박힌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경향을 의미한다. 경로의존성. 한번 경로가 정해지면 그 관성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바꾸기 어려운 현상을 의미한다.

2,000년 전. 세계를 정복한 대제국 로마는 유럽 전역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그 넓이를 놓고 고민하다 당시 로마군의 주력 부대인 로마전차의 폭에 맞추기로 결정했다. 말 두 마리가 끌던 로마 전차의 폭은 약 4피트 9인치로 말 엉덩이 두 개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 통하는 길의 폭은 그렇게 결정됐다.

19세기 초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은 일반도로에 석탄 운반용 마차선로를 깔아 증기열차의 운행을 시작했다. 각처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선로를 만들면서 또 말 엉덩이를 기준으로 한 마차 선로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광활한 주와 주를 연결하기 위해 열차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의 행정권이 틀리다보니 열차선로의 규격이 제각각 달랐다. 그 후 남북 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면서 동북부지역의 표준인 영국형 선로가 기준이 되면서 모든 미국의 선로 폭이 결정됐다. 그렇게 결정된 열차선로의 폭은 영국의 마차선로의 폭이 또 기준이 된 것이다.

2007년 8월 8일. 미국은 역사적인 우주왕복선 엔데버 호를 쏘아 올리게 됐다. 그런데 이 우주왕복선을 만드는 공장은 유타 주에 있었고, 발사대가 있는 곳은 플로리다 주였다. 결국 유타주에서 플로리다 주까지 추진로켓을 옮겨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추진로켓은 기차에 실려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다. 열차는 곳곳에 터널을 지나야만했다. 결국 추진로켓은 열차선로 폭에 맞춰 설계될 수밖에 없었다. 4피트 8과 2분의 1. 우주추진포켓의 폭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 철도의 60%가 이 표준궤도를 따른다. 인천에서 수원을 오가던 협궤는 표준궤도인 1.435보다 작다. 그래서 협궤열차라고 불린다.

두 마리의 말 엉덩이 크기가 결국 로마의 도로, 마차선로, 기차선로 그리고 우주로켓의 크기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 것이다.

한번 정해진 생각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따라가게 되어있다. 경로의 의존성 때문이다.

1867년에 개발된 수동타자기도 속도를 낼수록 자판이 엉키는 바람에 비효율적이었다. 결국 천천히 치도록 자판배열을 새롭게 했다. 그 후 65년이 지나 손가락의 움직임을 50%나 줄여주는 획기적인 자판이 개발됐다.

그러나 예전 자판에 익숙한 사람들은 쓰기를 거부했다. 결국 비효율적인 그 자판은 지금껏 우리 사무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과거의 관습이 현재를 지배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일명 관습이라는 전통법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점일 수도 아니면 악습일수도 있다. 미래 지향적 우리 삶의 발목을 잡는 방해꾼일수도 있다.

문학 공부할 때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과 몽상의 시학이라는 책을 넋 놓고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상상이라는 말이 매우 추상적이고 몽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상력이라는 단어는 예술과 문화를 뛰어넘어 사회를 이끌어가는 트렌드가 된지 오래다. 현실과 유리된 꿈이 아닌 현실을 견인하는 힘이 바로 상상력인 것이다. 바로 관습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힘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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