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 논설위원

개콘의 인기 코너 꽃거지의 넋두리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어찌 보면 세상은 부조리 속 조화의 궁금함, 자연 이치 속 신비로움의 궁금함. 언어유희 속 흔적의 궁금함 등 궁금함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단어나 숙어 혹은 지명을 살펴봐도 그곳에는 역사와 관습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다. 사람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래서 든다.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다하여 유수 같다고들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지 2013년. 이천 년의 역사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하루가 30시간쯤 되면 좋겠다며 바빠 죽겠다는 분이 계셨다.

시간은 상당히 상대적이다. 빠르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하루가 24시간이 채 안 되는 22시간처럼 짧을 것이고, 삶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사는 사람의 시간은 26시간도 27시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하루 시간이 5시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시간은 꼭 정해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시간 개념은 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얘기한다. 하루의 시간 길이가 지금은 24시간이지만 아주 오랜 옛날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지구가 탄생한 45억여 년 전에는 지구가 자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때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5시간이었던 것이다.

지구 자전 속도는 계속해서 느려지고 있다. 그 원인은 달의 인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조수 간만의 차이가 생기고 바닷물과 바다 밑바닥 사이에 마찰이 생겨 지구의 자전에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브레이크에 의해 느려지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10만 년 당 1초 정도밖에 변동이 생기지 않으니 말이다.

지구의 수명이 앞으로 50억 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지금처럼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다면 지구 최후의 날에는 무려 44시간이나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2배 정도가 하루라고 생각해 보라. 바쁜 사람들에게는 환영할 일이지만 늘어난 시간만큼 쓸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꼭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태평양의 어느 작은 섬에서는 날짜도 시간의 개념도 없다고 한다. 다만 자연의 흐름과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기록이 시간이 되고 또 후손들에게 이어져간다 한다. 그러니 시간은 어찌 보면 바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옥쇄와도 같은 것이다.

날짜 변경선이라는 것이 있다. 1884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자오선회의에서 날짜 변경선이 정해졌다. 지구의 날짜 변경선은 일본과 하와이 중간쯤인 동경 180도의 자오선을 따라 남극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위치한다. 이 날짜 변경선 덕분에 한밤중에 인천공항을 출발해도 같은 날 아침이면 하와이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날짜 변경선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직선으로 그을 시 같은 마을이라도 앞집과 뒷집의 시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시간이란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간을 숫자로 환원해 살아온 것도 사람들의 이익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처음 시간의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2012년 12월. 마야인들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여 온 달력의 마지막 부분을 그렸다. 지구의 마지막이 된다고 확언한 그 달력은 지구의 마지막이 2012년이라도 못 박았다. 사람들은 지구의 마지막 종말을 피하기 위해 피난처로 숨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바쁘면 살지 못하는 사회로 우리가 치닫고 있지만 바쁘지 않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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