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일 경기도의회 의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21세기는 누가 뭐래도 분명 지방화 시대다. ‘중앙정부’와 구분되는 ‘지방정부’라는 용어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밴덤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밴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공리주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시대가 흐르고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정부의 기능과 활동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수반됐다. 즉, 중앙집권적 정부조직의 일원적인 정책적 관점으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이전의 국가 주도적인 체제는 급격한 사회변동에 대한 에너지의 동원이라는 성공적인 평가가 될 수 있지만 반면 민주와 자율의 결핍을 가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1년, 30년 만에 지방의회가 재구성 되고 1995년부터 주민 직선의 지방단체장이 선출됐다. 가히 역사적이라 할 만한 일이다. 이후 20여년이 지나면서 지방자치법의 제정, 중앙정부 권한의 일부 이양, 자치권의 부분 확대, 주민참여 제도화 등 지방자치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도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권한은 여전히 강하여 지방정부의 자치 입법권, 자치 조직권은 제한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방 재정력은 너무나 허약하여 중앙정부 의존도가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방정부 주도의 지역개발은 말 그대로 허울일 뿐 현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안타까울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 지방자치 분권의 취약함은 바로 헌법의 보장 한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자치분권에 대한 필요와 당위성이 미흡하다. 그러다보니 지방자치에 관한 거의 모든 부분을 법률에 위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지방자치 및 분권 관련 규정이 전체 헌법 조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이며, 단일국가 체제인 대만의 경우도 헌법 중 지방자치 규정이 11%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이 헌법에 고작 2% 내외만 명기 되어 있다. 이는 앞의 독일이나 대만의 경우와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예로 우리나라는 현재 광역시·도와 시·군·구의 존립 여부가 국회의 의결에 따라 결정된다. 즉 국회의 뜻에 따라 광역이나 기초자치단체는 언제든지 사라지는 운명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자치입법의 상징인 조례는 헌법 117조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제정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지역별 다양성과 특수성 제고를 위한 자치 입법권은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조직, 정원, 직급에 대한 지도 및 감독 권한을 중앙정부가 행사하고 있으며, 행정권한 이양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인력이나 재원의 뒷받침 없는 기능만의 사무이양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주도적으로 지방행정을 추진할 여건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앙사무와 지방사무의 비율은 7:3 정도이고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도 8:2로 구성돼 있다. 지역발전을 위한 자주재원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여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많은 사회복지관련 사업은 매칭(matching) 형식으로 운영되어 지방정부에 과도한 지방비를 의무적으로 부담토록 하고 있다.
지방분권은 지역의 능동성과 다양성을 보장함으로써 상호 역동적 경쟁과 재원배분을 촉진하여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 주민의 참여의식을 신장시켜 민주적 경험과 공동체 역량을 높일 수 있다.
이제, 지방분권은 합리적으로 강화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이며, 진정한 지방자치제의 실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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