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중심의 향토사 연구·향토문화 소중히 알고 찾고 가꾸어야 합니다”

▲ 안산문화원에서만 22년째 활동하고 있는 이현우 사무국장은 최근 전국에서 단 두명에게 주어지는 국무총리상 표창을 받았다. "안산은 인물 중심의 향토사 연구가 필요한 곳으로 우리 향토문화에 대해 소중히 알고 찾고 가꾸어야 합니다"고 말하는 이현우 사무국장을 문화원 앞 초가집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 강희택 기자 kkang@banwol.net

“고향은 강원도, 안산문화원 국장 22년
저는 이제 안산의 … 원주민입니다”

안산시 도심에서 한 채의 반가운 초가집을 발견했다. 볏짚을 엮어 지붕을 만든 초가집 위에 서너 명의 인부들이 올라 바쁜 손길을 놀린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새롭게 이엉을 얹고 있는 모습이었다. 상록구 사1동에 위치한 안산문화원(안산향토사박물관)에서 발견한 정겨움이고 그리움이자 우리가 잊지 말고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경기도 내 문화원 사무국장 중 최장수를 기록하고 있는 안산문화원의 이현우 사무국장. 1990년 8월 첫 안산문화원과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2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안산문화원, 안산향토사박물관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이현우 사무국장의 개인사가 바로 안산의, 안산문화원의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현우 사무국장은 최근 향토사료의 발굴, 보존, 기록과 교육 및 지역고유 민속자료의 발굴, 복원에 기여하고 문화원사 건립과 2천516점의 민속유물을 직접 수집하여 안산향토사박물관 건립에 기여함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쾌거를 얻었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이현우 사무국장이 안산에 내려온 것은 지난 1979년, 아직 안산은 시로 승격이 되기도 전이었다. 일반적인 직장인으로 시작한 안산에서의 생활이었지만, 평소 시와 수필을 쓰며 문학 동호회 활동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안산문화원을 소개받았고, 약간의 주저함 끝에 결국은 선택했다. 그것이 이제는 삶 전체를 아우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이 되었다.
“안산에는 대표할 만한 명승고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인물 중심의 향토사학이 연구되어야 하고 그들을 제대로 알려냄으로써 안산시민으로서의 자부심 고양, 애향심이나 정주의식 등을 이뤄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는 이현우 사무국장이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마쳤지만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 이현우 사무국장을 찾아온 안산동 안산읍성 행사 관계자와 함께 문화원 주차장에 서서 나눈 안산향토사에 대한 대화는 또 다시 새로운 기사가 될 정도였다.
이현우 사무국장과 한 시간여 동안 나눈 안산의 향토사와 향토문화에 대한 담론을 지면으로 정리해 봤다.

쭣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소감은?
한국문화원 창립 50주년 기념식 행사에 맞춰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추천한 것이 좋은 성과를 얻었다. 전국 229개 문화원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사무국장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다. 특이하게도 이번 수상자 결정은 국민공개검증이라는 것을 실시했다. 즉,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 수상 후보자들의 이력과 활동내용을 공개하고 한 달 동안 이의제기를 받는 시간을 가졌다. 별다른 이의가 없었기에 표창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국무총리표창은 전국에서 두 명에게 주어졌다. 나 이외의 나머지 한 명은 전주문화원장이다.
이 표창은 나 혼자만의 상이 아니다. 안산문화원 김복식 원장을 비롯해 직원들 그리고 1,400명의 회원들이 함께 했기에 받을 수 있는 표창이었다. 22년 외길을 걸어왔다. 안산문화원 사무국장을 천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국무총리 표창에 대해 주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쭣 안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1979년에 처음으로 내려왔다. 당시 안산은 시로 승격되기 전으로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다. 서울에서 입사를 위해 면접을 보고 합격했는데 발령이 반월공단으로 났다. 그것이 안산과의 시작이었고, 이곳에서 결혼하고 아들도 낳아 키웠다. 그래서 나는 안산 원주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부도와 반월동의 지명에 대해서만큼은 그 지역 원주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대부도향리지와 반월동향리지를 발간하기 위해 수년 동안 숱하게 돌아다니며 체득한 지식들이다.

쭣 안산문화원에 대해 소개한다면.
1984년 창립된 이래 안산향토문화의 창달과 계승발전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안산향토사의 조사, 연구, 기록사업과 향토유물의 수집, 향토문화유적의 발굴, 보전사업, 지역 전통문화의 보존, 전승사업, 성호문화제를 비롯한 각종 문화 예술행사의 개최, 안산문화학교의 운영 등 안산시민들의 문화적 향수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대지 7,430㎡, 건평 2,098㎡ 규모로 세워진 안산문화원에는 2,5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향토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수장고, 향토사연구소, 문화 사랑방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부속 건물로 안산지역 전통초가, 연자방앗간, 물레방앗간 등을 만들어 전통문화의 보존 전승과 시민들의 문화공간의 역할을 맡고 있다.
부설 단체로는 둔배미놀이 보존회, 와리풍물놀이 보존회, 안산경기민요단, 여성락밴드 ‘쿨식스’, 아코디언 연주단 ‘은빛소리’, 천지사물패 등이 있다.

쭣 주요 사업과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연중 행사로는 5월 성호문화제를 중심으로 척사대회, 향토문화 유적답사, 문화학교 예술공연 ‘예울림’, 찾아가는 문화학교, 안산경기민요단 정기공연 등이 있으며 팔곡동 산신제, 잿머리 성황제, 별망성 산신제 등도 주요 행사다.
특히, 부설기관인 안산시사편찬위원회는 1990년 향토지 내고장 안산 발간, 1999년도 안산시사 발간, 2011년 개정판 안산시사 발간 등 변화된 안산의 모습과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고 있으며, 안산시사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반영 내년에는 안산시사의 요약본 발간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안산향토사연구소는 안산문화원 설립과 동시에 안산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발굴, 보존, 계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역 내 향토사의 발굴과 이를 토대로 연구·기록하기 위해 설립된 부설기관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안산문화원에는 다양한 문화 강좌도 열리고 있다. 풍물놀이, 사물놀이, 경기민요, 남도민요, 한국무용, 서예, 민화 등과 함께 전통예절, 한문서당, 명리학 등 소중한 전통을 잇기 위한 강좌들도 개설돼 있다.

쭣 경기도 내 문화원 중 최장수 사무국장이다.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20여 년 전 3평짜리 반 지하 사무실 시절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왔다. 당시 여직원 한 명과 함께 계간 안산문학을 창간했다. 단원 김홍도 선생이 안산 출신이라는 사실이 퍼져나가던 시점이다.  이후 올림픽기념관이 지어지며 2층으로 옮겨갔고 91년에는 전국시범문화원으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지하에 문화 사랑방 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또한 이때부터 본격적인 유물 수집에 나섰다. 옛집이 헐려 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새벽부터 트럭을 타고 다니며 지게나 맷돌 등 보이는 것마다 모은 것이 2,500점에 이른다. 이 중에서 약 300점 정도가 현재 향토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현재의 문화원 건물도 2003년 금강산 방문에서 알게 된 문화관광부 지역문화과장을 통해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아 건립할 수 있었다. 특히,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했던 일본에서 현대적인 건물과 전통 초가가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이를 반영한 것이 지금의 부설건물인 초가집이 만들어진 배경이 됐다.

쭣 안산의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해 달라.
안산에는 기존에 많이 알려진 성호 이익 선생이나 단원 김홍도 선생, 상록수의 최용신 선생뿐만 아니라 많은 훌륭한 역사인물들이 활동했던 곳이다. 한 예로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 휘하에서 용맹을 떨쳤던 김여물 장군 묘가 단원구 와동에 있으며 여전히 그곳에는 김여물 장군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단원구 화정동에는 조선시대 단종 복위운동의 주동자였던 김문기 선생 묘가 있다. 이 분은 사육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주도하다 죽었지만 사육신에 포함되지 못했었다.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서울 노량진 사육신묘에 가묘를 마련하게 됐다.
이외에도 문인으로는 홍명원, 윤강, 강징 선생 등이 안산의 자랑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조선 중기 문화적 중흥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문인들이다.
특히, 현재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청문당과 경성당은 전국적인 자랑거리다. 강세황 선생의 처가인 그곳에는 만권 이상의 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만권당으로 불렸으며, 이는 당시 전국적으로 4곳 밖에 없던 만권당 중 2곳이 안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쭣 애향심과 정주의식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면.
안산은 계획도시다. 우스갯소리로 ‘사니 안사니 하면서도 사는 곳이 안산’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안산은 살기에 좋은 곳이라 해석할 수 있다. 굳이 정주의식을 강요하지 않아도 살면서 살기 좋은 곳임을 스스로 느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안산시가 개발된 후 초기에는 교육 문제로 안산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훌륭한 교육기관들도 생겨났고 기타 여러 여건들도 훨씬 안정되고 있다.
안산은 특히 학문적 토양이 깊은 곳이다.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안산의 학자들이 이끌었다. 이후에는 이러한 토양을 바탕으로 교육도시로 발전할 것이다.
300년 전 성호 이익 선생께서 예언하셨듯이, 안산은 낮고 넓어서 편안할 안(安)을 사용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를 알려내기 위해 마련한 캠페인이 ‘소중한 향토문화 알고 찾고 가꾸자’이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에 내고장 알기 교육과정이 나온다. 이를 위해 관내 초·중·고 교장을 대상으로 역사 투어를 진행했는데 무척이나 반응이 좋았다. 60학급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초등학생들의 역사 탐방도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에는 역사문화 아카데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버스를 직접 구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초등학생들의 역사 탐방을 더욱 확대해 진행함으로써 그들이 성장하면 안산에 대한 정주의식은 자연스럽게 배양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정년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 비록 문화원 사무국장 직은 떠날지라도 향토사연구소 일은 계속할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안산시의 비지정문화제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평가 절하됐던 가치를 복원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
 / 강희택 기자  kkang@banw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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