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종교적 중립 지키며 봉사하고 회원 화합 도모하겠다”

▲ 반월신문은 밝고 환한 웃음을 가득 담고 있는 호남향우회 17대 박종만 회장을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하나가 된 호남향우회를 최전방에서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지키면서 안산의 발전을 위해 시민들과 함께 봉사하는 호남향우회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 장 선 기자 now482@banwol.net

안산시에 거주하는 약 33만여명의 호남 출신 향우들의 모임인 재안산 호남향우회 제 17대 회장으로 박종만(54. 사진) 회장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정치 세력 개입설 등이 나돌며 2명의 회장이 각각 추대되며 두동강 났던 호남향우회가 지난 7월부터 박 회장 단독 체제로 정상화된 것이다.

고문들이 추대한 박종만 회장과 박향수 회장 체제로 양립했던 호남향우회는 그동안의 아픔을 털고 다시 향우회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7월 3일 정기이사총회를 열어 정식 임원진을 출범시킨 박 회장은 별도의 취임식은 하지 않고 내부 조직을 정비하면서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등 순수한 향우회 정신을 살리면서 호남향우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정이 많고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박 회장은 단독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호남향우회관에서 스포츠, 문화 취미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애사시 상조를 운영, 호남향우회 로고가 인쇄된 종이컵과 일회용 젓가락을 제작해 무료로 제공하며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향우들의 아픔을 나누고 있다.

안산시에 호남향우회가 정착하게 된 동기는 섬진강 수몰지구 이주민들이 정부 시책에 의해 안산으로 정착하며 시작됐다.

당시 고향을 떠나 안산에 정착한 출향인들은 고향의 옛정을 나누는 만남의 장으로 호남향우회를 조직하는데 합의를 보고 지난 1979년 1월 19일 반월신도시 호남향우회 발기총회를 개최했으며 같은해 12월 13일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회장으로 김경태 회장을 선출했다.

이후 재안산 호남향우회는 꾸준히 회원들이 늘어났으며 회원들의 뜻을 모아 1989년 3월, 상록구 일동에 첫번째 회관을 건립했고 이어 2006년 5월 13일 현재 상록구 이동 623-1번지 소재 두번째 호남향우회관을 건립하며 안산에서 호남인들의 긍지를 높히는데 크게 기여했다.

반월신문은 17일 오후 2시 상록구 이동 호남향우회관에서 박종만 회장을 만났다.

 

 

쭣 재안산 호남향우회의 언제 창립됐는가.

“재안산 호남향후회의 첫 시작은 안산이 시로 승격되기 전인 지난 1979년 1월이다. 섬진강 수몰지구 이주민들이 정부의 시책에 의해 안산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고향을 떠난 호남인들이 뜻을 모아 호남향우회 조직에 합의하며 발기 총회를 개최했다. 이어 12월 13일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지금의 재안산호남향우회가 시작됐다. 34년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재안산 호남향우회에는 그동안 16대 회장을 역임했고 저는 지난해 5월 26일 17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했으나 통합 회장으로는 7월 3일 정기이사총회를 통해 본격 활동을 하고 있다. 역대 회장과 임원진 등 선배들이 닦아 둔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그분들의 보이지 않는 힘과 현재 약 33만여 회원들의 든든한 지지가 있어서 호남향후회는 앞으로 더 순항하리라 생각한다.”

 

 

쭣 재안산 호남향우회의 산하 지회를 소개해 달라.

“재안산 호남향우회에는 현재 전남과 전북의 총 51개 시군지회가 있으며 정회원과 본회 임원 그리고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약 33만여명에 이른다.

호남향후회 산하 51 시군지회는 20인 이상의 회원으로 조직돼 있다. 시군지회장은 본회의 당연직 이사로서 발언권과 의안제출권, 의결권, 선거권 등을 갖고 있다.”

 

 

쭣 17대 호남향우회장으로 향후 운영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가장 기본적으로 향우회는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원칙으로 고수할 것이다. 앞으로 호남향우회는 향우회원들과 함께 안산 지역사회를 위해 더욱 낮은 자세로 봉사하며 향우회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

지난 7월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면서 전체 안산시민을 대상으로 스포츠, 문화, 취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호남향우회는 호남인 뿐만아니라 안산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향우회가 될 것이다. 취미교실에서는 남도판소리와 민요 국악교실을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국악 전문 선생님을 모시고 향우회관 4층에서 남도문화를 즐기는 시간을 갖고도록 하고 있으며 매일 운영되는 탁구교실은 향우회관 지하 명예의 전당에서 누구나 참여해 체력증진에 기여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또 애사시 상조를 운영해 슬픔을 함께 하도록 하고 있다. 호남향우회는 애사시 호남향우회 로고가 인쇄된 종이컵과 일회용 젓가락을 제작해 무료로 제공하며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향우들의 아픔을 나누고 있다.

앞으로는 향우회가 호남인만 만나는 것이 아닌 안산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 기존의 ‘모여라, 돈내라’하는 향우회가 아닌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회원들이 결집될 수 있으며 계승할 것이 많은 우리의 것을 많이 보여주는 향우회가 되겠다.”

 

 

쭣 박 회장과 안산의 인연은.

“저는 1982년도에 군 제대후 사업차 안산에 잠깐 살았다. 이후 1991년도에 전남 강진에 살던 부모님이 안산에 살고 있던 외삼촌으로 인해 안산으로 이사를 했고 저는 1994년부터 안산에 정착했으며 이후 부산과 인천, 서울 등에 흩어져 있던 7남매가 모두 안산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안산에 온 형제간들이 살고 있어서 안산은 저의 제2의 고향이며 개인적으로 안산을 매우 사랑하고 그래서 늘 행복하다.”

 

 

쭣 향우회 활동을 하면서 유익한 것이 있다면.

“사실 타향에 살고 있는 출향인들은 고향에 계속 사는 것보다 외롭기도 하고 가끔은 서러운 일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향우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려고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향우회라는 것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저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만나면 좋다. 사람들을 통해 득을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르신을 공경할 줄 알고 아랫사람을 잘 아루르는 생활의 규범을 체득할 수 있어서 좋다.

향우회에서는 한 살이라도 많으면 형님으로 모시고 한 살이라도 어리면 따뜻하게 동생으로 여긴다.

타향에 살면 핵가족화 되어서 자녀들도 문화 계승을 보여줄 수 없는데 향우회에서 활동하면 고향의 정취를 느낄수 있으며 충과 효의 마음으로 상부상조하며 단결할 수 있는 한민족의 정서를 계승할 수 있다.”

 

 

쭣 박 회장과 호남향우회와의 인연은.

“지금은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상열 고문과 임흥무 고문을 사업하면서 만나서 호남향우회를 소개받았다. 제 고향인 강진향우회보다 호남향우회 본회를 먼저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저 만나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차장과 국장, 사무처장과 상임위원, 부회장과 안호산악회장등 본회의 중요 직책은 두루 해 봤다.”

 

 

쭣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우선 지난해 호남향우회 내홍으로 인해 양분된 모습을 안산시민들에게 보여드려 진심으로 미안함과 죄송함을 갖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향우회는 봉사단체로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되지 못하고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호남향우회는 1979년 창립돼 34년의 세월동안 선배들의 노력으로 훌륭한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앞으로 호남향우회는 위로는 선배님들을 모시고 아래로는 후배들을 아끼고 서로 사랑하는 상경하애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회장과 사무총장은 어떤 당적도 갖지 말아야 하고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원로들의 숭고한 뜻을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이 심기일전해서 안산지역사회 발전에 33만 호남인들을 최선을 다할것을 지면을 통해 약속드리겠습니다.”

전남 강진 출신의 박 회장은 지난 1991년도에 부모님이 안산으로 먼저 이사하면서 안산에 정착했으며 이후 7남매가 모두 안산에서 살고 있다.

/ 장 선 기자 now482@banw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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