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서 경기도의회 의원

풍경-1>전남 무주군 안성면사무소. 한적한 시골의 최말단 행정기관인 이곳이 언제부턴가 하루 종일 주민들로 북적댄다. 면사무소에 목욕탕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공동체 문화도 만들어진 것이다. 노인들을 중심으로 온 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거점이 됐다. 이곳에서 온갖 소식이 전해지고, 서로 교류하고 소통한다.

무주 공공건축프로젝트를 담당했던 건축가 고 정기용은 이 면사무소를 설계하기 전에 가장 먼저 주민들을 만나 “뭐가 필요하냐”고 묻고 다녔다.

그런데 대다수 주민들로부터 나온 대답은 다소 엉뚱했다. “새로 돈 들여 면사무소를 왜 짓느냐? 필요 없다”는 것. 그렇다고 안 지을 수는 없는 일. “그래도 꼭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다시 묻고 다니자 “먼 동네에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한 목욕탕이 있으면 좋겠다”는 답이 나왔다. 행정기관에 목욕탕을 집어넣은 안성면사무소는 이렇게 하여 위대한 공공건축물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주민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온전한 해답을 마련해 공급한 것이다.

풍경-2>생태하천 공사가 마무리중인 안산시 화정천. 둔치에 새로 길이 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자전거 타고, 걷고, 때로는 뛰면서 아무 말 없이 서로 스쳐 지나가지만 무언의 교감이 이뤄진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요” “힘 냅시다” 서로의 표정에서 격려하고 위로를 받는다.

화정천변의 풍경 역시 공공건축이 갖는 놀라운 흡입력과 이것이 낳은 생활의 변화를 보여준다. 장맛비에 덧없이 쓸려가고, 동강나는 사태를 보고 부실공사니, 청계천을 모방한 어항이니 아니니 하는 논란은 일단은 접어두자. 공공건축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곳 역시 주민의 필요성, 즉 걷고 싶은 욕망에 대한 수요를 한쪽 둔치에나마 반영함으로써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풍경-3>안산시 와동 종합사회복지관 주민 설명회장. 복지관은 좁은 대지에 간신히 밀어 넣은 지상 4층짜리 건물이다. 여기에 가정,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복지 다 하려니 눈만 즐겁지 입은 심심한 종합선물세트 같다. 골목길은 폐지 줍는 노인들로 넘쳐나고, 목욕탕 하나 없는 이 지역에 안성면사무소처럼 복지관에 목욕탕을 집어넣으면 어떨까. 벌써 3회째 주민설명회인데다 예산과 공기문제로 발상을 바꾸는 설계변경은 불가능하다는 답이 가로막는다. 모든 게 만시지탄이다.

안성면사무는 과거, 화정천은 현재, 복지관은 미래 시점의 공공건축물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안산시는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반성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려 들지 않는다. 정기용에 따르면 공공건축에서 첫 번째 고민해야할 것은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지 아닌지 묻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이 행위를 요식행위나 통과의례 정도로 손쉽게 넘어가 버린다.

둘째는 ‘필요성’이 인정될 때 어떻게 그 규모와 형식을 갖추느냐는 점이다. 공공건축은 자본의 논리에서 제외된 영역을 보살피고 뒷바라지하는 공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공공건축은 이를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온전한 해답을 마련하고 공급할 의무가 있으며, 주민과 국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안산은 아파트 등 민간분야뿐만 아니라 공공건축물에 있어서도 본격적인 재건축시기에 접어들었다. 더 늦기 전에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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