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시인

점(占) 치는 사회를 보며, 우리가 21C의 첨단 과학 시대에 살면서, 정신적으로는 18C쯤의 과거로 회귀를 꿈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년이면 어김없이 신문과 잡지, 인터넷에 등장하는 점 문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대체 “손으로 쌀을 집어 나온 쌀알의 숫자가 짝하면 길(吉)하고 홀하면 흉하다”던가, “담뱃불이 잘 탓나 꺼졌나 또는 담배가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았나” 하는 것을 보고 운세를 판단한다는 식의 유치한 행동에서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인가? 현대는 확실한 것 같으면서도 불확실성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작년만해도 크고 작은 재앙이 우리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상은 적응할 틈도 주지 않고 고속질주로 변화하고 어느 누구도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운명을 속 시원히 얘기해 줄 수 없다. 그래서 첨단 과학 시대에 초(超)종교, 반(反)과학적인 풍조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불황 시대에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으며 전 세계적으로 급속이 확산되고 있는 점(占) 문화는 이제 생활(?)로서 자리매김 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컴퓨터와 카페 등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침투해 있는 점 문화. 본래 700 전화서비스라는 것이 말 그대로 전화를 통해 각종 기상, 스포츠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서비스였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가 직장, 애정, 금전운을 비롯, 사주궁합, 토정비결과 관련한 운세 서비스로 변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달 통화료 10만원 이상을 투자해 가며 온 가족의 운세를 하루하루 점치는 열성주부도 있다고 하니 가히 놀랄 일이다.
이렇게 통화 복채로 소비되는 서비스료가 연간 수백억 원 이상을 상회하고, 여기에 직접 점집을 통해 흘러드는 돈까지 추정하면 웬만한 지방자치단체의 일 년 예산과 맞먹을 정도라니 우리가 점에 빠져드는 현실을 무작정 ‘그저 심심풀이’라는 식으로 호도할 수도 없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러한 행동을 무속인들을 통해 암시를 받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억압된 감정을 투사하며, 비록 비논리적일지라도 자신의 갈등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공감해 주고 암시해 주는 행위를 통해 위안을 받으려 하나 이는 자기 통찰력을 흐리게 하는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지나친 탐닉에 따른 불행을 경고”하고 있다.
문화센터의 생활 역리학 강좌가 붐비고, 점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생기는가 하면, 인구 증가율을 앞서가는 점치는 집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운은 없을 것인가?” 이같은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점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은 버려야 할 것이다.
2007년 새해를 밝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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