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의 환공이 고죽을 토벌하였을 때, 출발할 때는 봄이었고, 돌아올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주위 풍경이 완전히 변하여 길을 잃었다. 그 가운데 지혜 있는 관중과 습붕이 함께 있었다.
관중이 하는 말이,
“이럴 때는 늙은 말에게 배워야 합니다.”
하였다. 그래서 시험 삼아 늙은 말을 풀어주고 그 뒤를 따랐더니, 마침내 길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곧, 산길에 들어서니 먹을 물이 없어서 모두 기갈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 때 습붕이,
“개미란 놈은 겨울에는 산의 남쪽에, 여름에는 산의 북쪽에 서식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미집 아래 여덟 자를 파면 거기에는 반드시 물이 있다는 말을 들었사오니 한번 산기슭 남쪽으로 돌아 개미집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라고 말했다. 그대로 하였더니 먹을 물을 구할 수 있었다.
한비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관중이나 습붕같은 지혜 있는 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말이나 개미를 스승으로 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성인의 지혜를 스승으로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고 말했다 한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우리에게는 배울 것이 있고, 늙은 부모에게도 배울 것이 너무도 많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단지 우리가 구하지 않을 뿐입니다. 성경에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보다 값있고, 황금보다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지혜를 잡는 사람에겐 행복을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헤겔은 지혜를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배유해, 황혼에 이 부엉이가 날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이는 지혜의 사상과 이론 내지 철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현실의 움직임이 끝난 황혼에 조용히 날면서 현실이 남겨 놓고 간 자취를 굽이굽이 살피고 더듬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동물의 단순성에서 훌륭한 지혜가 여과 없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만 우리네 삶을 보면 지혜라고 하면서도 바보 같은 모습이이 내재하고 있음을 봅니다. 간교와 허튼 지식과 헛된 욕망이 펄펄 꿇는 마음에서 어찌 깨끗한 지혜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허버트는 사람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지혜의 한계를 충고했습니다.
“누구나 하루에 적어도 5분간은 저주할 만한 바보가 된다. 지혜란 그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지혜로운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임이 틀림없습니다. 지혜로운 지도도,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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