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시인

2008학년도 입시부터 논술 비중을 늘리겠다는 발표가 있은 직후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논술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객관식 시험에 대한 폐해가 지적될 때마다 논술 시험의 강화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사교육비 경감 여론에 밀려 본고사 논술 시험은 부활만 꿈꾸다 번번이 주저앉곤 했다. 창의력 있는 학생을 변별해 우수 인재로 키우겠다는 대학 측의 야심찬 계획도 함께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닌 모양이다.
“학원 논술, 당장 그만 두라!”
판에 박힌 학원식 주입 교육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면서 대학 교수들이 한 쓴 소리다. 논술 시험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학원식 주입 논술의 또 다른 폐해를 보는 듯해서 가슴이 아프다. 논술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런데 논술 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학원인 셈인데, 그 학원 수업이 뻔한 문학작품 내용을 들먹이며 전개하는 식이어서 참신성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논술을 가르칠 교사가 없고, 학원에서는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진부한 논리를 전개하는 법을 가르치다보니 논술의 본래 취지를 퇴색케하고 있다는 지적이고 보면 가장 전통적인 방법인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토론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논술문의 구조는 간단하다. 서론 본론 결론에 이르는 삼단 논법에 군더더기 없이 주어진 주제에 대해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어려운 문장이 아닌 읽기 쉬운 문장이 좋은 글이다. 평소에 얼마만큼 읽고, 쓰고, 토론했나하는 것이 좋은 논술문을 만들어내는 관건인 셈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꾸준히 해왔다. 글쓰기 지도자를 양성하는 강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부모들이 먼저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본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래도 부모가 본이 되기 때문이다. 논술하면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해 학원에 맡기고 보자는 식이 아닌 부모들이 먼저 나서보는 것도 좋겠다.
중고등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점은 평소 독서량아 너무 적다는 점이다. 그러니 어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문과 잡지 뉴스를 접하지 않으니 시사성도 떨어진다. 그런 상태에서 좋은 글이 나올 리 만무하다. 기본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글과 설득력을 갖춘 토론을 이끌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프랑스는 수학과 철학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무엇이건 간에 수학과 철학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 프랑스의 모든 대학 지망생들이 똑같이 치러야 하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서도 수학과 철학에는 가산점을 주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의 국어 수업에서도 리포트를 요구할 때 한 달간 에밀 졸라의 작품을 3권 이상 읽고 그 작품 세계에 나타나 있는 시대 상황과 사회, 경제, 정치적인 역할 관계를 분석하라는 식이다.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를 봐서도 이게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 맞는가 할 정도이다. 예를 들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등이다.
논술 시험을 눈앞에 두고 너무 고민하지 말자. 늦었지만 천천히 읽고,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자. 초등학교에서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고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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