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문화원 사무국장/향토사학자 이 현 우

긴 장마끝에 계속되는 폭염이 좀처럼 수그러들줄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지난 8월 8일 입추(立秋)가 지나고 8월 23일은 처서(處暑)이니 이미 가을은 우리곁에 와 있다.
입추는 24절기의 열세번째로 동양의 역(歷)에서는 입추부터 입동(立冬)까지 석달을 가을로 한다. 입추 15일간을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 닷새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중후(中候) 닷새간에는 이슬이 점차 진해지고 말후(末候) 닷새간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였다. 절기상으로 지금은 입추의 말후쯤에 해당하니 남은 더위가 있다고 해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은 틀림이 없다. 입추 다음날인 말복은 여름이 끝났음을 뜻하니 여름과 가을이 겹쳐지며 넘어간다는 뜻이다. 따가운 햇볕에 오곡이 익기 시작하면 농부들도 한가해져서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란 말이 예부터 전해져 온다. 벼가 한창 익어가는 계절이므로 입추 뒤에 비가 닷새 동안만 계속와도 옛날에는 기청제(祈晴祭 : 날이 맑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처서는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로 처서 15일 후에는 열다섯 번째 절기 백로(白露)가 된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며, 처서는 말 그대로 남은 더위를 다 처분한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데 햇볕의 따가움이 덜해지므로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아 산소의 풀을 깎기도 하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무성했던 풀을 깎기도 한다. 처서 15일간을 닷새씩 셋으로 나누어 초후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에는 논의 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더위가 가시어 모기의 성화에서도 벗어난다는 절기이다. 장마에 젖은 옷이나 습기차 눅눅해진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를 하는 시기도 이 때이다. 예부터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맑은 가을하늘이 요구되는 절기이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요즘에는 봄과 가을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여름이 끝나면 바로 겨울이 오는 것 같고 겨울이 끝나면 곧바로 여름이 시작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절기는 아직은 뚜렷하여, 비록 봄과 가을이 좀 짧아 진 듯한 느낌은 있지만 이제 우리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에 와 있는 것이다. 남은 더위에 더 이상의 짜증내는 일 없이 맑은 가을하늘처럼 청아한 마음으로 이웃들과 미소를 나누며 가을의 가운데에 서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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