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날이다. 2박 3일간의 짧은 여정이 너무나 아쉽다. 오늘은 만물상과 삼일포 해금강 코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만물상을 오르고 싶었으나 어제 산엘 갔다 왔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해금강을 간다고 하길래 해금강을 택했다.
해금강 가는 길은 최근에 포장을 해놓은 듯 했다. 곳곳에 인민군 병사들이 붉은 깃발을 들고 서 있다. 500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그들은 마을이고 들판이고 똑같은 간격을 들고 서 있는데 가이드의 말이 우리가 지나가면 곧바로 철 수 한다고 한다.
가는 길목에는 마을 지나고 또 학교가 듬성듬성 눈에 들어왔다. 낡은 건물, 초라한 북한 어린이들의 옷차림. 어느 소학교를 지나는데 마침 운동장 조회를 하고 있다. 칠팔십 명이나 될까 열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절도는 있으나 낡은 옷차림에 학교 건물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고 낡았다.
저녁 무렵에도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는 온정리 마을. 전신주는 낡은 나무로 되어 있고 그나마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고 보면 학교 내부시설이야 오죽하랴.
우리 일행이 손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년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쓸쓸하다.
해금강은 그야말로 청정수역이다. 여기저기 바다에 기암괴석이 불끈 불끈 솟아있는 경치는 그야말로 바다의 금강이라 할 만하다. 동료들은 연신 사진 찍기에 바쁘고 나도 그 틈에 끼어 연신 아름다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와중에도 작은 트럭에 술과 먹을 것을 싣고 다니는 ‘달리는 포장마차’는 우리 일행을 따라 다니며 연신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모습이 우리네 시장 골목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과 같다.
삼일포는 널따란 호수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다.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숙을 찬양하는 글귀들이 바위를 수놓아 불쾌한 생각이 들었지만 안내하는 아가씨의 상냥한 설명과 또 노래 덕에 기분이 다소 즐거워졌다.
삼일포 정자에 앉으니 그 옆에서 꼬치구이와 생두부 등의 안주거리와 막걸리 소주를 판다. 우리는 다시 질펀하게 술자리를 벌였다. 이 좋은 경치를 보며 좋은 술과 안주가 눈앞에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얼큰하게 술에 취했는데 가이드가 다음 일정이 바쁘다며 재촉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삼일포를 걷다보니 정철의 풍류가 생각난다.
‘고성을 저만치 두고 삼일포로 찾아가니 단서는 완연한데 네 신선은 어데 갔는고, 예서 사흘 머문 후에 어데가 또 머물꼬’
혹시나 해서 네 신선이 썼다는 단서의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세월이 흐른 탓인지 그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다시 온정리에 도착을 하여 나는 어제 먹은 냉면의 쫄깃쫄깃한 면과 육수가 못내 그리워 다시 옥류관을 찾았다. 이번에는 쟁반냉면을 배부르게 먹었다.
국물까지 쪽 빨아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바닥이 난 냉면 그릇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짐을 싸고 우리를 실은 버스는 다시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처음에 무서워 보이던 북한군 병사가 어느새 친근감이 들고 북방한계선에서 짐 검사를 받고 나오는데 노래가 확성기를 타고 울린다.
‘잘 있으라 다시 만나자. 잘 가시라 다시 만나자’
그 노래가사가 어찌나 마음을 애닯게 하는지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같은 민족, 얼굴모양이 같고 언어가 같은 동포끼리 그동안 어찌 총부리를 가슴에 겨누고 살아왔던가. 이제라도 이렇게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달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철로가 우리를 따라 오는데 한창보수 공사 중인 것을 보면 머지않아 저 철로위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열차가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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