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방학이라 집에서 빈둥거리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사진이 한 장 필요하니 빨리 보내란다. 이유를 물으니 금강산을 다녀오란다. ‘금강산이라니......’ 교육부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금강산 여행을 보내주는데 내가 그 대상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살다보니 별일 다보겠네. 이렇게 해서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금강산 유람을 하게 되었다.
우선 배낭과 아내의 권유로 운동화도 샀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내복도 한 벌 넣고, 단단히 준비를 했다. 아침 7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으로 서둘러 가니 십 여대의 버스가 도열을 해 있다. 출발! 서울을 빠져나와 진부령을 넘고 대진항에 이르니 12시 반이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더 가서 남측 출입통제소에 도착을 했다. 30분에 걸쳐 통일 교육을 받고 핸드폰을 반납하고 드디어 남방 한계선을 넘어 비무장 지대를 지나 북방한계선에 다 달았다. 난생 처음 대하는 인민군 병사. 마른 얼굴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내 서류를 검토한 다음 나를 바라보는데 무섭다. 긴장을 하며 다시 버스에 올라 북으로 향한다. 옆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얼마가지 않아서 작은 바위산이 하나가 나왔다. 안내원의 말이 저 산이 금강산 일 만이천봉 중에 남쪽에서 첫 번째 봉우리로 구선봉이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만 있는 작은 산 구선봉. 난생 처음 보는 금강산 한 자락을 바라보니 그제야 인민군 병사를 대할 때 생긴 무서움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며 내가 북한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온천으로 유명한 온정리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무를 금강산 패밀리 비치호텔 주변에 있는 온정리 마을에는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대략 오십여 가구정도 되는 마을로 집들이 모두 똑 같다. 온정리 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다섯 시 반. 시장기가 돌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선 식사를 하기위해 나누어준 식권을 들고 식당을 찾아 갔는데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이 먹음직스러웠다. 야채는 현대아산에서 직영하는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라는데 어찌나 신선한지 배부르게 먹었다. 밥을 먹은 다음 동행한 동료교사들과 같이 온천장을 찾았다. 신기한 일은 온천장까지 가는 길가에 북한군 병사가 있고 또 마을 주민들이 우리가 머무는 지역을 지나가기도 하는데 우리 서너 명이 어울려 온천장 까지 걸어가는 것을 아무도 통제하지 않았다. 서울 어느 거리를 거닐고 있는 것처럼 자유스러웠다. 온천장은 시설이 훌륭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벌거벗고 목욕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아! 남자들의 벌거벗은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남자들의 모습이 이럴진대 여자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탕 속에 쭈그리고 앉아 즐거운 상상을 하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데 바로 눈앞에 금강산이 바라보이고 머리위로는 별들이 반짝인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것이 바로 신선놀음이다. 온천을 마치고 우리가 숙박할 금강산 패밀리 호텔로 가니 한 방에 두 명씩 자도록 배정을 했는데 나는 우연찮게도 십년 전에 같이 근무하던 옛 동료이자 같은 국어과 선배인 정 선생님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고 흥이 많은 정 선생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늦은 시간에 밖에 나가 술을 가지고 와서 밤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끝이 없다.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이 고교동창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잠이 슬며시 밀려오고 어느새 자정을 넘어서고 있다. 정 선생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으나 나는 피곤한 했던 탓인지 잠이 밀려오고 그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제야 정 선생이 눈치를 챘는지 이불을 펴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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